시즌5-053
1
어머니는 냉면용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어 놓으셨다.
이미 몇 번 냉면을 해주셨는데 맛이 좋았다. 아버지도 나도 대만족이었다.
어머니도 양념장이 잘 만들어졌다고 뿌듯해하시며 자신감이 넘치셨다.
2
어제, 어머니는 다시 냉면을 해주셨다. 아버지와 나는 기대했다.
특히 나는 요 며칠 새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그런지 허기가 심했다. 어머니 잔심부름을 하며 냉면이 완성되기만을 고대했다.
드디어 냉면 완성!
얼른 양념장과 면을 비벼서 한입 가득 후루룩 빨아들였다.
근데?
에?
3
맛이 없었다. 싱거운 것도 같고 맨숭하고.. 새콤함도 없고....
맛없다고 하면 어머니가 기분 상해하실까 봐 슬쩍 물었다.
"양념장에 뭘 더 하셨어요?"
"아니. 면이 불어서 맛이 그런가 보다."
어머니도 맛이 좀 덜한 것을 느끼시지만 요리 과정에 의심 가는 데가 없으신 듯했다.
나는 맛이 없어서 흠칫했다. 하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꾸역꾸역 먹었다.
"아!"
어머니가 갑자기 깨달으신 듯 웃으셨다.
"이게 냉면 양념장이 아니라 김치 다대기인가보다. 잘못 넣어서 맛이 이렇구나."
"여태껏 모르시다가 김치 다대기인건 어떻게 알아요?"
"이거 봐, 냉면 양념장보다 고춧가루가 좀 굵잖아. 다대기 양념통이랑 헛갈렸네."
어머니가 이유를 알아내시기 전까지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내가 몸이 안 좋나?
더위를 먹어서 입맛을 잃었나?
운동부족으로 식욕이 감퇴되었나?
밤잠을 잘 못 잤는데 그래서 미각이 제대로 인지를 못하나?
별생각을 다하다가 원인을 알게 되니 안심은 되었으나 냉면은 여전히 맛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다대기가 맛있어서 냉면 맛이 이 정도가 되는 거지."
긍정성이 별스럽게 발현되시는 우리 어머니.
맛이 없는 건 맛이 없는 거지, 다대기 덕에 이 정도가 되는 거라니.
평소 육수까지 깨끗이 마셔서 그릇을 비우는 나였지만, 맛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음식물 쓰레기만 생기게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면발만 후룩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도 얼추 다 드시고 그릇을 옮기시면서 내 얼굴을 힐끗 보시고는 짜증을 내셨다.
"가스나.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온 얼굴을 찌푸리네그려."
나는 황당했다.
별말 안 하고 다 먹었는데... 찌푸린다니?
미간? 오빠가 어릴 때 하도 울려서 7살에 형성된 미간 세로 주름을 나보고 어쩌라고?
난 그냥 원래 찌푸린 얼굴이라구요!!
가만있으면 화났냐고 묻는 얼굴인데....
에잇, 효심으로 냉면을 다 먹어도 뭐라 하시고.. 다 먹지 말걸. 아우 억울해.
4
그날 저녁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시다가 화면 안에 식사 장면이 나오자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하셨다.
"아우.. 다대기를 넣어서... 안 그랬으면 맛있을 껀데.."
맛없는 냉면을 먹은 나와 아버지는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신가 보다.
당신만 맛없는 냉면을 먹은 게 아니고 남편, 딸, 둘에게 맛없는 냉면을 먹이신 게 뼈아프신 실수 인양, 후회 인양 한숨 쉬시는 것이었다. 실수가 많이 신경 쓰이셨나 보다.
그 모습을 보고 다짐했다.
5
생명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어머니가 실수하신 어떠한 음식을 대면하더라도 부드럽게 미소 짓겠다고 말이다.
활짝 웃어서 미간 세로 주름을 편편하게 하며 '저는 어머니 실수 괘념치 않아요. 어머니, 괜찮아요.'라는 메시지를 드릴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뭐, 우리 어머니가 진짜 냉면 집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암.
6
이참에 얼굴 인상도 화난 상에서 웃는 상으로 바꿔볼까 한다.
미간 세로 주름 펴면서 예쁘게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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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계속 걱정하는 것이다.
-엘버트 허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