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52
1
오빠가 일생일대의 큰일을 앞두고 있다.
나는 오빠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면도기, 신발, 옷 등을 제안하며 "사줄까?"라고 물어봤다.
오빠는 "정말 안 사줘도 돼. 나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말할게."라고 했다.
나중에 말하겠다고 했지만 본새를 보면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사주기로 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를 제안해봤다.
"어학 태블릿 사주면 공부할래?"
오빠는 반은 마음에 들고 반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어학공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태블릿이 생기는 것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사주기로 했기 때문에, '이건 마다하지 않는 걸로 봐선 좀 괜찮은가 봐. 됐어. 나쁘지 않은 걸 거야.'라고 생각하고는 인터넷 뱅킹으로 결제했다.
어제 물품이 도착했다. 구입해놓고 보니 케이스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건 얼마 안 되는 것이니까 오빠 보고 구입하라고 놔둘까, 하다가 '얼마 안 되는 건데 기왕 선물하는 거 구색 맞춰서 해주는 게 생색내기에도 좋지.'싶어서 또 급히 인터넷 쇼핑으로 하나 결제했다.
생색내겠다고 결제했지만, 나는 나를 아는데 아마 생색 못 낼 거다.
사람이 워낙 점잖다 보니.... (앗, 돌.)
2
홀더펜과 심을 구입했다.
홀더펜의 심은 직경 2mm 짜리로 두껍고, 홀더 펜은 그 심을 움켜잡듯이 고정하는 펜대이다.
나는 이미 홀더펜 하나와 B 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홀더펜대 2개, 2B심과 블루 심, 이렇게 4개의 물품을 주문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준 전문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 아마추어일 뿐인데, 그림에 대한 욕심은 크디크고, 그러다 보니 미술 도구에 대해서도 욕심이 많다.
이상스럽게 미술 도구나 재료만 사면 뿌듯함과 함께 자신감이 '만빵'이 된다.
피카소, 로트렉, 마티스 할아버지들에게 반말을 해도 결코 내가 건방져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신감. 외려 그분들이 "져니님에게 한 수 배우고 싶소이다."라고 머리를 조아릴 것만 같은 이상한 상상이 떠올라서 행복하다.
(일단 외국어로 말할거니까 반말해도 뭐라하지 않으시겠지 하는 속내와 당연히 대적할 수 없는 분들임을 아니까, 거기에 대면할 일 없으니 막 말해본다.)
물론 '내가 왜 이러지?"하는 생각을 한다.
도구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이용해 열심히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 실력을 닦는 것만이 미덕임을 안다. 아는데도 미술재료만 구입하면 내가 곧 로트렉씨와 같은 반열에 있을 것만 같다.
이상한 상상은 그만두고 연습장을 채워야겠다.
3
더워서 바깥출입하기가 꺼려지니 여름이야말로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바꾸겠다.
더운 것도 정도껏이지 이렇게 더우면 독서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습도가 높아서 몸이 찐득찐득하다. 땀이 뻘뻘 나면 샤워하면 되는데 이렇게 샤워했는데도 다시 슬금슬금 찐득하면 씻기에도 어정쩡하고, 아우.... 모르겠다. 너무 덥다.
되도록이면 외출은 금해야겠다.
-------------------------------------------
내가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속에 있는 양심이다.
-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