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냥

시즌5-054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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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주 동안 너무 더워서 내방에 있을 수 없었다.

작업을 하려고 컴을 켜면 본체의 온도계가 40도에 임박하니, 이러다 본체 불 나는 거 아닌가 싶어 무서운 나머지 컴도 켜지 못했다.

노트북과 좌탁을 가지고 안방으로 갔다. 날이 너무 더워서 에어컨 켜는데 인색하셨던 부모님도 많이 너그러워지셨다. 몇 주 동안 거의 매일같이 에어컨을 켜셨으니까 말이다.

여하튼 나는 안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놀았다. 몇몇 작업은 노트북으로 가능했지만 그림만큼은 노트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때문에 차선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지난주 자잘 스토리의 그림은, 스캐너도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폰으로 찰칵 찍어 급히 올린 그림이었다.





2


에어컨 나오는 안방에서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좌탁과 노트북만 가져갔는데, 어느새 다이어리, 샤프, 독서대, 책, 연습장, 미술 펜 등등 한 보따리의 짐을 안방에 펼쳐놓았다.

안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나의 짐이 점점 많아지자 어머니는 "요만큼 밖으로 나오지 마"하고 공간을 지정하며 야박하게 눈치를 주셨다.

그러나 져니는 에어컨 바람이 솔솔 나오니 세상 살 것 같은 기분에, 어머니 말씀대로 지정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놀았다.





3


그러나 몇주간을 안방에서 기본 작업만 하고 지내다 보니, 스멀스멀 죄책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너무 일을 안 하고 지내잖아, 이러면 곤란한데.....


폭염의 나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 더위의 날들을 안방에서 지냈고, 그 긴 날들을 거의 놀았다고 보면 된다.


그래, 내가 몇 년간 휴가가 없었잖아. 이참에 긴 휴가를 지낸다고 생각하자.


그런 마음으로 더 푹 쉬었다.





4


보통 CEO가 중요한 일을 발표할 때, 그 발표 시점을 살펴보면, 휴가를 지내고 난 직후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몸과 마음을 릴랙스하며 쉬다가 영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래서 휴가가 끝나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휴가는 정말 중요한 것인가 보다.





5


져니도 긴 휴가 동안 뭔가가 떠올랐다. 혁신적인 영감은 아니지만, 여튼 하나의 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에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이제 얼추 준비는 다 갖추어졌는데 시작하자니 겁이 난다.





6


그러고 보니 CEO는 앉아서 지시 하달만 하면 되지만... 나는 내가 직접 바지런히 움직여서 해야 하는데.....

이거 된통 난감한 일을 사서 만든 것 같다.

재료가 아까워서라도 시작은 할 것이다. 하지만..... 아.. 나도 지시 하달할 수 있는 CEO이고 싶다.





7


날이 선선해지면 조금씩 시작해야지, 암.

달리 뭐라 할 말은 없고, 다만 뭔가를 시도하거나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훌륭하게 뛰어나게 하려고 하지도 말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그냥 하세요,라고.




8


그 말은, 완벽하게 하고 싶은데 절대 완벽하게 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 때문에 마음이 번잡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시작하려는 모두와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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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추구하는 한

마음의 평안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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