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이야기

22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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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가지 종류의 강좌를 듣고 있다. 이미 충분히 벅찬데 호기롭게 다른 강좌를 또 신청해놨다. 그랬는데 수요일에 또 다른 강좌를 발견했다. 시간이 허락지 못해서 그건 포기를 했지만, 여튼 뭔가 마구 배우고 싶은 느낌이다. 딱히 시험이 있는 게 아니라서 더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것도 같다.

여하튼, 패션, 의학, 철학에다가 독학으로 어학까지, 분야도 다양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것들을 배워서 꼭 뭘 어떻게 써먹어야겠다는 목표도 없다. 그냥 취미처럼 슬렁슬렁 배우고 있을 뿐이다. 지인 중 누군가는 이런 나보고 "배보다 배꼽이 크네요."라고 한다. 직무보다 취미를 더 많이 한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일을 하기 싫어서, 아니 잘하고 싶은데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다른 일들 속으로 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잘하고 싶으면 외려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싶어서 백지를 꺼냈는데 막상 무엇을 그릴지 엄두도 안 나고 점 하나도 못 찍겠는.. 그런 비슷한 경우인 것 같다, 나의 경우가.


날은 덥고, 지인들은 휴가 계획 세우느라 들떠 있더라.

나는 따로 휴가 기간이 없다. 다만 세 강좌 중 한 강좌가 방학이 있다고 하더라. 성인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 방학이 있다니까 약간 황당했으나, 졸업한 지 3천만 년 만에 방학을 가져본다고 하니 그 느낌이 또 새롭다. 하지만..... 흐윽.... 방학이 되어도 집을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냥 잔뜩 물을 얼려놓아 그 얼음을 동동 띄워 콜라, 주스, 맥주, 커피 등등을 들입다 드링킹 할 생각이다.


프리랜서는 그렇다. 놀아도 논다고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논다고 하고, 일하다가 잠깐 볼일 있어 외출하면 또 논다고 한다. 흥....


나는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은데, 그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굉장히 바쁜데, 다만 핵심업무인 작업을 좀 더디 할 뿐인데...... 하지만... 양보해서 생각해보면..... 논다고 해도 할 말이 없구나....(아, 왜 눈물이 나오지? 흑.....)


그게 다 백지 공포에 시달려서 그런 거다. 그리고 날이 더워서 그런 거다.


......라고 투정을 부려봤자 결론은 하루빨리 작업하는 생활로 돌아가는 것뿐.


신청했던 강좌 하나를 포기한다. 봐 뒀던 다른 강좌 하나도 단념한다.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매일 조금씩 작업해 나가야겠다.

정말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에 선풍기 두 대를 켜놓고 작업에 몰두해야겠다.








2


<황금어장>을 시청했다. 이경규 씨와 이윤석 씨 등이 출연했다.

이경규 씨와 이윤석 씨는 얼핏 느끼기에 대장과 졸병이랄까, 왕과 대신이랄까 그런 상하관계로 느껴진다.

일방적으로 이경규 씨가 이윤석 씨를 부리고 이윤석 씨는 꼼짝없이 이경규 씨를 따르는 그런 이미지였다. 대외적인 이미지라고는 생각했지만 어느 일부는 사실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또 이윤석 씨에 대한 내 느낌은 늘 '너무 말랐다.'라는 정도였다. 아내분이 한의사라고 하신 것 같은데 어째서 살은 찌워지지 못하는가? 한의학으로도 당최 이윤석 씨를 찌울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튼 그가 늘 너무 말라보인다는 게 주된 나의 느낌이었다.


<황금어장>에서 이윤석 씨는 이경규 씨가 든든한 느낌이 든 적이 있으셨다고 한다.

이윤석 씨가 부친상을 치르실 때 이경규 씨가 오셔서 같이 계셨다. 이윤석 씨가 밤에 화장실을 가는데 이경규 씨가 동행했단다. 화장실에서 나란히 서서 볼일을 보면서 잠시 두 분은 눈이 마주치셨는데 그때 이경규 씨가 슥 웃으시더란다. 그 웃음은 특별히 무언가가 웃겨서가 아니라 헛헛하고 친근했던, 이해와 위로의 웃음이 아닐까 싶다. 그 웃음을 받은 이윤석 씨도 슥 웃었단다. 이윤석 씨는 그때의 상황이 뭔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고, 이경규 씨가 든든하게 여겨지는 느낌이었다고 하시더라.


이 일화를 듣는데 그 화장실에서의 짧은 순간 두 분이 나누신 연대와 공감의 감정이 잠시나마 내게도 전달되었다. 두 분이 괜스레 친하게 지내시는 게 아닌 듯하고 이경규 씨가 마냥 까칠한 주인처럼 이윤석 씨를 부리는 것은 아니구나, 그리고 이윤석 씨도 몸은 말랐어도 감성은 굉장히 풍부하구나 싶었다. 잊히기 쉬운 잠시 잠깐의 일화와 그 감정을 마음에 담고 기억에 담아놓으시는 것 보면 참 심성이 말랑말랑하고 두터워보이신다.


보기엔 말랐지만 더 이상 이윤석 씨가 말랐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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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받아서 삶을 꾸려나가고, 주면서 인생을 꾸며나간다.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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