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농담

시즌5-081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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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이 70대 남자 샘에게 말씀하셨다.


"전화해 보셨어요?"


남자 샘은 대답하셨다.


"내년 12월 29일로 예약 잡았습니다."


"후우~ 2년을 기다려야 하네요."




2


주변 샘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ebs 명의라는 프로그램에서 40년간 손 떨림이 있는 사람이 그걸 수술로 고쳤다는 내용이 나왔어요. 샘(남자 샘)이 손 떨림이 있으시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그 병원을 알려드렸거든요, 전화해보시라고. 근데 워낙 예약 환자가 많아서 내년 12월에야 볼수 있다고 하시네요. 샘.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보세요. 가끔 빈자리가 나기도 하니깐요."


남자 샘은 별로 기대를 안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게 그렇게 쉽게 자리가 나겠어요?"


그러자 나이 지긋한 다른 샘이 말씀하셨다.


"예약 걸어놓고 기다리다 그 사이에 죽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잔잔하게 웃음이 퍼졌다.




3


60~70대 샘들은 심심찮게 죽음을 소재로 농담하신다.





4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도 농담 비스무레 말씀하셨다.

나 먹으라고 꼬마 김밥을 싸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 죽고 나면 꼬마 김밥 보면서 내 생각하겠지?"


순간 마음이 한없이 아련해지면서 이상스러웠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시냐고 짜증을 내려다가 내가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모님의 죽음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비빔국수 먹으면서도 생각날 거고, 수제비 먹으면서도 생각날 거고,

된장 아욱죽 먹으면서도 그렇고, 김치도 그렇고... 뭐든 먹을 때마다 생각나겠지요."


한껏 마음을 추스르고 약간은 서글픈 그러나 솔직한 마음으로 말했다.

어머니도 나도 곁에 계시던 아버지도 한 10초간 침묵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이긴 했다.





5


아직 잘 모르겠다.

어머니가 저리 말씀하셨을 때 "안 죽으면 되지~~ 오래 사시면 되지~~" 라고 찡얼거리듯 애교를 부렸어야 했을까?

'돌아가시면 생각날 거다.'라는 말은 정답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6


죽음을 농담 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생사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안 죽으면 된다고 회피하던 때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유 있게,


"돌아가시면 제사상에 소원 목록을 올려놓을게요. 귀신이면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 아니에요? 젯밥 드시고 부지런히 움직이세요. 자식을 위해서 좀 움직이시고, 할 수 있으면 로또 번호도 부탁해요. 대신 젯밥은 성심성의껏 차려드리지요."


..라고 아주 태연스럽게 농담하는 단계까지는 이르르지 못했다.










7


부모님은 건강하시다.

하지만 조금씩 연로해 가시는 게 안타깝다.


나는 죽음을 두고 회피 단계와 농담 단계 중간 어디에서 고민하고 있는 단계 같다.

그건 죽음의 수용단계 언저리이지 싶다.






8


햇볕 좋고 날씨도 적당히 좋다.

방금 부모님과 점심 식사를 했는데 식사 중에 두 분, 언쟁하시더라.

기분이 좋았다.

언쟁도 기력이 짱짱해야 가능하니까.

두 분의 기세를 따지면 임종은 한 30년 뒤에나 찾아올 것 같다.

30년 안에 수용 단계는 어찌어찌 딛고 일어서겠지.




9


이상, 죽음 갖고 농담하시는 어른들 때문에 심각해졌던 한때의 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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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다.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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