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혹은 돌팔이

시즌5-089

by 배져니
20190419-러브 사본.jpg




1


어머니는 <용왕님 보우하사>를 보시고 저녁 식사를 하신 다음 <왼손잡이 아내>를 보신 뒤 뒤이어 <비켜라 운명아>를 시청하신다.



2


어머니 손에 뜸을 떠드리려고 했더니 늘 바쁘시다고 안 받으신다고 하셨다.

나는 저녁 일일 드라마 시간을 노렸다. 때로는 이르게 어떨 때는 조금 늦게, 여하튼 일일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안방으로 어머니를 찾아가 손을 잡아끌어 뜸을 올렸다.




3


그러다 보니 일일드라마를 곁에서 어깨너머로 시청하게 되었고 대략의 돌아가는 줄거리를 파악했다.

결국 나도 드라마를 챙겨보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내 모습이 볼만하다.




4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내가 말한다.

"무슨 일이죠?"

드라마 주인공이 그 순간 말할 대사를 유추해서 내뱉은 것으로 주인공은 여지없이 "무슨 일이죠?"라고 말한다.

나는 "봐요. 맞죠?"라고 대사 맞히기에 여념이 없고 한편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드라마가 너무 질질 끌어. 저거 하나 가지고 며칠째야?"

어머니는 스토리의 강약, 전개의 완급을 평가하신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외치신다.




5


"앗! 뜨거!"




6


손에 올려놓은 뜸을 다른 손으로도 덮어서 열기를 쬐시다가 드라마에 빠지셔서 거리 조절에 실패, 손바닥을 뜸 불씨에 데이신 것이다.

어머니는 괘념치 않으셨다.

"세상에 어떻게 엄마가 저러냐!"

여전히 드라마에 빠져계신 울 어머니.





7


뜸을 다 떠드리고 도구를 챙겨 안방문을 열고 나가노라면, 어머니가 그 재미있는 드라마에서 시선을 떼고 한마디 하신다.


"원장님. 고마워."



그 말씀이 기분 좋았다. 처음엔 '돌팔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뜸을 떠드렸다. 아니, 손에 뜸뜨는 게 뭐 고급 기술도 아닌데 왜 돌팔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웃기면서도 기가 막혔는데, 그래도 몇 개월 꾸준히 떠드리러 가니 그 성실성을 인정해서 '원장님'으로 격상시켜주신 듯하다.




8


가끔 작업하던 걸 멈추고 뜸떠드리러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좀 번거롭기는 해도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뜸을 떠드리러 가는 거 하나로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건강에 좋다는 거 해드리고 있는 거니까, 나, 효도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뜸으로 인한 어머니 건강의 상승세보다, 떠드리면서 내 마음 편해짐의 상승세가 더 가파를 것이다.

어쩌면 효도가 아니라 내 만족이지 싶다.




9


그래도 결코 내 만족만을 위해서는 아니라는걸, 어머니는 아실 거라 믿는다.




10


아버지께도 뜸을 떠드리고 싶은데 아버지는 싫다고 하시며 나를 아직도 '돌팔이'라고 부르신다. 쳇.




--------------------------------------------------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쉬우나

부모를 사랑하는 효행은 어렵다.


-장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종의 만족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