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90
1
강좌를 같이 듣는 김 샘은 70대로 추정된다. 그분은 여기저기로 취미와 신앙생활을 하러 다니신다고 하셨다. 내가 아는 그분의 스케줄만 해도 벌써 4가지가 넘는다.
아담하신 그분은 자기 몸의 반쯤 되는 가방을 들고 다니신다.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시느라 이런저런 물품과 책을 가지고 다니느라 그런 것이었다. 수강이 끝나고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서 슬쩍 보니 가방이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지하철 역까지만 들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분의 어깨에 걸려있는 가방끈을 쓱 가져와서 매었다. 가방이 상당히 무거웠다. 지인은 가방을 걸머진 어깨 쪽으로 힘을 더 쏟고 계셨나 보다.
내가 가방끈을 쓱 가져오자 샘은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이셨다. 슬쩍 몸이 기운 정도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휘청이시는데 그 모습이 몸개그 같은 모습이어서 속으로 쪼끔 웃었다.
2
그런가 하면 가는 길에 꽃집이 있었는데 한쪽에 고추 모종을 좌라락 놓아두어 판매하고 있었다. 샘이 자꾸 그곳을 돌아보며 말하셨다.
"모종을 좀 사다가 심을까 했는데, 가져가기가 어려워서 못 사겠네예. 저 고추 모종이 신실해 보이는데..."
누가 신앙인 아니시랄까 봐 ㅎㅎㅎ
고추 모종이 '신실'하면 고추 모종의 종교는 뭔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그분의 단어 선택에 또 한 번 웃었다.
3
아버지는 자꾸 내가 사다 놓은 과자를 숨기신다. 당신께서 드시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를 놀리기 위해 숨기시는 것이다.
나갔다가 과자를 사 왔다. 잠시 방바닥에 꺼내어 늘어놓고 급하게 볼 게 있어서 컴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슥 쳐다보니 방문이 열려있고 그 아래 아버지가 포복해서 방에 들어선 채 팔을 뻗고 계셨다. 팔의 방향은 내 과자 더미. 몰래 집어가서 숨기려고 숨어 들어오셨다가, 내가 돌아보는 바람에 숨을 들이켜시는 아버지의 그 모습에 나는 별다른 반응도 못하겠고, 그냥 서로 한 3초간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의 팔은 과자를 향해 뻗은 채로 멈춰있으셨다, 3초간.
그다음 순간, 둘 다 파안대소를 했다.
아, 정말. 우리 아버지 아직도 소년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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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조약돌마다 삐걱거린다.
-헨리 와 드 비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