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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21. 2019

독서 한가위

시즌6-003





1


독서대가 고장 났다. 방바닥에 둔 그것을 내가 밟아서 그리되었다. 판에 직각으로 연결되어 책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나무대가 꺾여서 270도로 벌어졌다.

나무가 휘거나 부러진 건 아닌데 그 나무를 고정하는 나사가 빠져버려서 책을 지탱하는 역할이 상실되었다.

새로 하나 살까 하다가 아버지께 맡겨보았다. 이래저래 나사를 조이고 붙여서 멀쩡한 듯이 만들어주셨지만 뽑혔던 나사는 고정이 안되어서 다시 뽑히곤 했다. 그에 따라 다시 나무대가 270도로 꺾이고 말이다. 반복해서 그렇게 되니 어느 정도 포기하고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에 며칠 방치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독서대 봤어? 고장 나서 버려야 하지?"

그 어조가 정말 '버려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 것이기 보다 '봤냐'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말씀하시는 어조라서 나는 방으로 들어가 독서대를 찾아봤다.

멀쩡해져 있었다. 헐거운 나사를 좀 더 직경이 두꺼운 나사로 교체하여 박아놓아서 단단하게 잘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더 튼튼해진 것도 같았다.

웃음이 났다.

'독서대 봤어? 이 아빠가 해놓은 거 봤어? 잘 고쳐놨지?'라는 의미였음을 깨닫고 나니 아버지가 귀여우셔서 한참을 웃었다.






2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최대 대출 가능 권수는 5권이지만 대여기간 안에 안락하게 다 읽을 수 있도록 3권만 빌려왔다.

예전엔 독서 욕심이 많아서 되도록 많이 빌리려고 애썼으나 이제는 못 읽고 반납하는 책이 있으면 아쉽고 괜스레 찜찜해서 적당량만 빌린다. 그게 3권 정도인 것 같다.




3


유튜브에서 어떤 분이 매일 1권씩 완독해서 3~4년 안에 2천 권을 읽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독서를 하면서 삶이 다이내믹하게 변화했다며 그 에피소드를 말해주는데,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매번 떨어지던 면접을 통과하고,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게 되는 등,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격동적으로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더라. 한편, 그분의 안색이나 어조와 태도는 차분하고 지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모로 생각하게 했다.


독서가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사람을 변화시켜서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을 달리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방식이 현명한 대처여서 상황을 좋게 만들고 결국 변화를 가져오게 된달까. 





3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얼른 2천 권 읽고 변화하고 싶당.

3권 대출이 웬 말이냐, 5권씩 빌려랑.

오락 방송 보며 시간 죽일 때가 아니당, 얼른 책 읽어랑.


한 해의 3/4가 지나도록 몇 권 되지 않는 독서량이 후회됐다.


그래, 올해, 내가 좀 바쁘긴 했엉. 그래도.. 이건.. 아니잖앙.

엄숙하게 반성해랑.


그렇게 자아비판과 반성을 하고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열독, 책 1권을 완독했다.




4


하지만 안다.

잠시 반짝 열의를 발휘할 일이 아니라는걸, 독서는.

꾸준히 성실히 매일같이 읽어야 하는 거다, 독서는.


마침 말썽이던 독서대도 온전해졌고, 읽을 책도 넉넉하니 이건 마치 영혼의 한가위를 맞이한 것 같구나. 책 읽기 좋은 풍년일세~.





5


실로 오랜만에 독서에의 열의가 일어났다.

독서는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기왕 읽으면서 즐거움과 함께 뭔가를 얻게 된다면 더 좋은 게 아니겠나.

나, 되도록 많이 읽겠다고 다짐한다. 

2천 권 완독하고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좋은 쪽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져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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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라도 매일 조금씩 읽기로 결심하라. 

하루 15분씩 시간을 내면 연말에는 변화가 느껴질 것이다.


-호러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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