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05
1
지인이 갤럭시 노트 9를 샀다.
그녀는 갤럭시 노트의 펜을 꺼내어 화면에 끄적였다.
내가 한 번 그어보고 싶다고 해서 건네받은 후 3등신의 작은 캐릭터를 그렸다.
예전 기기들은 선을 그으면 화면에 인식되어 선이 나타나기까지 간극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력이 좋아졌나 보다. 바로바로 선이 그어지고 느낌도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잘 그려져서 기분이 좋고 지인은 잘 그려지는 자신의 갤럭시 노트가 흡족해서 기분 좋고, 그렇게 서로 기분 좋게 그 시간을 보냈다.
이틀 뒤.
휴게실에서 갤.노의 화면을 보고 있는 그 지인을 발견하고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하고 여전히 갤.노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갤.노 화면의 액정필름에 펜 자국이 선명히 그어져 나타나있었고, 정말 부인할 수 없게시리 딱 내가 이틀 전에 끄적인 캐릭터 그림 모양의 자국이었다. 젠장. 내가 너무 힘줘서 그렸나 보다. 모른 척할 수도 없는 게 정말 딱 내 그림 모양 그대로 자국이 나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어리둥절해했다. 모르는 건가? 그래도 나중에 알면 역시 기분 나쁠 테니까 이실직고하자.
내 설명에 그녀는 화면을 이리저리 각도를 돌려서 보더니만 웃더라.
"정말 그림 자국이네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화면이 고르지 못하냐고 했었는데... 몰랐네요."
나는 그녀의 갤.노 화면을 지문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이게 이렇게 문질러 눌러주면 회복되기도 해요. 하지만 회복 안되면 제가 새 필름 붙여드릴게요."
"미안하게 어떻게 그래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미안해지더라.
결국 합의를 봤다. 그녀의 생일이 12월 27일인데 그때 생일 선물로 필름을 붙여달라고 하더라.
그때 가서 필름이 회복이 안되어있으면 새로 하나 붙여주고 다행히 회복되어있으면 작게라도 뭐 하나 해줘야겠다.
2
오전에 잠들어서 곤히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었다.
전날 무리하게 오래 깨어있었는데, 고스란히 피곤함으로 누적되어 폭면을 취하게 된 모양이다.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께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너 죽었는지 살았는지 엄마 보고 확인해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진짜 죽은 거 아닌가 싶어서 아까 들어가서 봤다니까."
오래 자긴 했지만 '죽은 거 아닌가?'라는 과장법은 나를 헛웃음 짓게 했다.
3
얼마 전 영어 수업에서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lazy(레이지-게으른)'라는 단어가 나오자 뒤에 70대 여자 수강생분이 조그마하게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마이 허즈번드 이즈 레이지(My husband is lazy)"
4
한낮에 매미소리를 들은 게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한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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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보복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실패요,
하나는 네가 하지 않은 일을 한 옆 사람의 성공이다.
-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