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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Nov 23. 2019

귀여우신 아버지

시즌6-012




1


아버지의 생신을 치렀다. 아침식사 시간, 미역국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말씀을 하셨다.


"나 오늘 생일이야."


나는 실소를 날리며 말했다.


"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2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나갔다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내 방문을 슬쩍 열며 말씀하셨다.


"나 막걸리 마실 건데, 너 마실래?"


"막걸리 누가 사 왔어요? 없었잖아요?"


"나 오늘 생일이야. 네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막걸리 챙겨 사 왔어."


생일이 아니어도 자주 사다 놓고 틈틈이 즐기시는 거라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는데도 아버지는 생일 운운하시며 기분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막걸리를 한 잔씩 맛있게 마셨다.





3


그 전날 나는 커피 용품을 잔뜩 주문했고 로켓 배송으로 다음 날인 아버지 탄생일에 택배를 수령했다.

저녁나절, 선물 받은 모카포트와 택배로 수령한 바닐라 시럽으로 바닐라 라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유튜브로 진력이 날 때까지 방법을 찾아봐서 숙지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잘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실전은 매끄럽지 못했다. 처음이라 만드는 과정이 어수선했다. 

포트로 커피를 추출하고 두유를 데우고 거품을 낸 후 섞어서 만드는데,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 저녁 설거지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무난히 만들어낸 후 바닐라 라떼 두 잔 중 한 잔을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고 나서 나는 뒷정리를 했다.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하고 행주를 빨아널고 드디어 나도 편하게 앉아서 마셔보겠구나 싶었을 때 아버지가 식탁에 커피를 약간 쏟으셨다.


사람은 참 별거 아닌 걸로 화가 나는 것 같다.

편하게 마셔보겠구나 하는 기대가 무너졌고, 식탁을 다시 닦아내야 했고, 차가워진 수돗물이 손을 시리게 하는데 그런 온도의 물로 다시 행주를 빨아야 하는 게 약간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감히 아버지께 싫은 내색을 했다.


"아버지는! 에이! 참!"


아버지는 민망해하시며 나의 기분을 달래주려 하셨다.


"닦으면 되지. 뭐, 그렇게 닦으면 되는걸...."


식탁을 닦으면서 내 안색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셨다.

그리고 곧 한 마디 하셨다.


"나 오늘 생일이야."





4


아침엔 실소를, 오후엔 미소를, 저녁엔 파안대소를 지었다.

우리 아버지 정말 귀여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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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생일같이 보내라.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이끌어 가라.

매일 감사하면 삶은 절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모어 아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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