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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Nov 30. 2019

아주머니와 소주병

시즌6-013





1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쪽 어느 집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가방에 뭔가를 집어넣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집사람들이 앞에 내다 놓은 소주 병을 지나가던 그 아주머니가 집어서 가방에 넣고 계신 거였다.

그 아주머니는 폐지를 줍는 분이 아니었다. 화장도 곱게 하시고 입성도 깔끔했으며 간편하고 조그마한 가방을 착용하고 계셨다.

가방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병 두 개가 겨우 들어갈 만한 사이즈였는데 내가 목격한 그 상황에선 가방에 두 개째의 병을 억지로 욱여넣고 계셨고 문 앞에는 아직 한 개의 병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요즘은 얼마를 주는지 모르겠으나 병 세개면 몇백 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버려진 병을 팔 생각으로 챙기시는 것 같았다.




2


얼마 전에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했는데 이잣돈이 붙어있었다.

1년 동안의 이자였으나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라서 "이것 봐! 세상에!'라고 하기보다 "이것 봐라! 에개!"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이잣돈은 1천 원보다는 컸었다.




3


그 즈음 나는 정신없이 웹 쇼핑을 하던 때였다.

 부모님 생신 선물을 구입했고, 두유도 박스째로 구입했고, 드립 서버가 깨져서 그것도 구입해야 했다. 

거기에 전동 그라인더, 각종 시럽과 샷잔까지, 강림하신 지름신은 오래도록 나와 일체가 되었고 나는 신의 뜻(?)대로 이것저것 부지런히 물건들을 사들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1천 원 2천 원 정도는 돈같이 안 느껴졌다. 웹 쇼핑의 결제가 그렇듯 실물 지폐를 건네주는 게 아니니까 더욱 쉽고 편하게 결제한 것 같다.





4


소주병 가방에 넣는 아주머니를 목격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모습은 결코 내게 권장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고, 하지만 몇백 원은 별 볼 일 없는 돈이 아니라는 인식을 주었다.

"이것 봐라! 에개!"하던 이잣돈은 소중하고 큰돈이었던 것이다.

땅을 파봐도 1천 원을 구할 수 없고 하늘 아래 '꽁돈' 1천 원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받은 이잣돈과 쉽사리 결제하던 돈은, 돈같이 안 느껴지던 돈은, 아주 많이 되게 현실적으로 제법 큰돈이었던 것이다.





5


얼마 전 지인이 내게 한 달에 쓰는 돈이 얼마만큼 되냐고 물어봤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한 달에 '얼마'를 쓴다며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고 자조했다.

지인이 얼마를 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으로 가늠해봐도 조금 크기가 있는 비용이었다. 친구도 만나고, 얼마 전에 이사도 했고, 최근 연애도 하고..... 써야 할 일이 많았으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달만 그렇게 쓴 것인지 이전 달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인지는 못 물어봤다. 어찌 되었건 간에 지인은 앞으로 가계부를 써나가며 절약하겠다고 다짐하더라.






6


지인은 지인대로, 나는 나대로 나름 경제관념을 재정비 한 것 같다.


나의 경우,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범위가 '만 원'단위였는데, <입성 깔끔한 아주머니의 소주병 사건>이후로 범위를 '백원'단위로 바꾸기로 했다.


아. 얼른 부자 되어서 '백만 원'단위로 변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예전에 그런 광고가 있었다.


"여러분! 부우우자아아 되세요!"


이걸 안다면 그대는 나와 동년배.

아무튼 여러분! 부(우)자(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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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를 알고자 하거든 가서 돈을 조금 빌려보라. 

돈을 빌리러 가는 것은 슬픔을 빌리러 가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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