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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Dec 07. 2019

자잘한 이야기 06

시즌6-014


1


수업을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수업 중이라서 일단 못 받고 끊었더니 잠시 뒤에 카톡 알림이 왔다. 

누군가 했는데 보니까 어머니가 보내신 것이었다. 

5분 내로 수업이 끝날 것이라서 카톡 확인도 나중으로 미루고 막바지의 수업내용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평소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일상이 평화로워서 요즘은 더더욱 연락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수업받고 있는 걸 어머니도 아실 텐데 그 와중에도 내게 연락하실 일이 무엇일까?


한켠에 스멀스멀 불안함이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카톡을 확인했다.

짧고 명확한 지시문이 적혀있었다.


-OOO에서 크림빵 사와라.-


뭔가 낚인 느낌이었다.






2


결혼해서 분가한 오빠는 잘 살고 있다.

오빠는 결혼 직후에 내게 말했다.


"집에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알았지?"


부모님께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기꺼이 개입하여 해결할 생각인 것 같았다.

오빠의 그 말에 괜스레 든든해지더라.


어느 날, 얼굴을 본 지도 오래이고 궁금하기도 해서 오랜만에 오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빠, 일해?-


안부의 말을 보내기 전에 바쁜지 안 바쁜지부터 확인하려고 보낸 문자였는데, 보내자마자 숫자 1이 사라지고 곧 답장이 왔다.


-왜? 집에 무슨 일 있어?-


워낙 연락을 안 하다가 뜬금없이 문자를 보냈더니 오빠도 잠시 놀란 것 같더라.

그랬다. 우리 가족은 용건이 있어야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이다.






3


새언니가 마음에 든다. 말씨도 곱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한다. 

무뚝뚝한 오빠랑은 놀기도 어려우니까 새언니랑 놀고 싶다.

언니에게 전시회를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싶지만 꾹 참았다.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나는 언니에게 시댁 식구.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선뜻 더 큰 친밀함을 만들지 않고 있다.

어쨌든 서로 서서히 젖어들 듯 동화되고 융화되길 바랄 뿐이다.





4


어머니가 요청하신 크림빵은 우리 동네 지점에서는 안 팔았다.

모처럼 입맛 당기는 게 있으신데 못 사다 드려서 죄송했다.

차선으로 김치만두를 사다 드렸는데 맛있게 잘 드시더라.


전에 내가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보시더니,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모습이 예쁘네."


라고 하셨다.


이번에 어머니가 만두를 오물오물 드시는데, 내 보기에 그 모습이 사랑스러우셨다.

절세의 미인도 먹을 때에는 미태가 떨어진다고 하더라.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절세미인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 같다.

먹을 때에도 그냥 서로 아름답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5


잠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 

학원 수업이 있는 날, 아침 8시경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낮 1시 40분이었다.

식겁했다. 2시에는 나가야 하는데 늘어지게 자느라 늦게 생겼다.

아버지 왈,


"차로 데려다줄게, 그러려고 안 깨웠어. 더 자."


아버지의 마음은 사려 깊으셨지만 간과하신 게 있으시다.

나, 여자다.

화장할 시간을 계산해서 좀 더 미리 깨워주셨어야 했다.

20분 안에 후다닥 준비하고 나가니, 아버지가 차를 끌고 나오셨다.

덕분에 늦지는 않았지만, 뭐, 아버지의 마음 씀씀이가 감사했지만, 선크림만 겨우 바른 추레한 맨얼굴이 내내 신경 쓰였다.

아버지, 감사는 하지만, 그래도 저 여자예요.

뭐..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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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있을 때 온 연락은 경계하고 

낮은 곳에 있을 때 온 연락은 기억하라


-장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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