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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11. 2020

편히 먹는 장어

시즌6-019








1


부모님, 오빠 내외와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선택한 음식집은 장엇집.




2


직원분이 숯불에 올려놓은 장어는 엄청나게 컸다.

하도 풍요로운 시대라서 장어마저도 잘 먹고 잘 살아서 큼직하고 두툼한 모양이었다. 

과장 조금 얹어서, 해체된 그것을 복원한다면 이무기가 된다 해도 믿을 판이었다.

맛은 조금 아쉬웠다.

살점이 큰 만큼 기름졌고 10점 먹을 때까지는 고소하고 맛있었으나 그 이상부터는 질려서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일단 질릴 때까지는 부지런히 먹고 그다음부터는 애먼 사이다만 들입다 마셔 젖혔다. 느끼함이 조금 가셨다.




3


예전, 소개팅으로 만난 그와 장어를 먹을 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장어는 가격이 높았다. 며칠 전의 장어를 이무기라고 한다면 그때 그 장어는 미꾸라지만 했다. 기름지기보다 담백해서 맛은 좋았는데 양이 너무 적었다.

서로 알아가야 했으므로 그는 이런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해나갔고 그러느라 그는 몇 점 못 먹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치게 발설할 때 나는 묵묵히 들으면서 장어를 한점씩  천천히 먹었다. 

말하느라 바빴던 그가 1점 먹을 때 나는 아마 2점 정도 먹었을 것이다. 

그는 정보성 이야기를 계속했고 어느 순간 나는 젓가락질을 멈춰야 했다. 

먹다 보니 꼬리 부위로 추정되는 삼각형 살점 하나가 마지막으로 남았던 것이다. 

그는 그때까지도 열의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불판 위의 장어 한점을 발견했다. 그는 말했다.


"드세요."


"전 많이 먹었어요. 드세요."


"1인분 더 시킬까요?"


"저는 배가 부르네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드세요.'라는 권유에 진심을 담아 '그럴게요.'라고 말하고 싶었고

'더 시킬까요?'라는 질문에 '묻지 말고 더블로 시켜요.'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의를 알기에 마지막 한 점은 그에게 주어야 했고, 염치가 있기에 식사 비용을 내는 그에게 그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4


이번 가족 식사 비용은 아버지가 계산하셨다.

맛 좋은 장엇집을 알아내신 아버지가 아들 며느리 먹이고 싶으시다고 마련한 자리였다. 

아버지는 계산서를 보면서 "사이다를 도대체 몇 캔 마신 거야?"라고 하셨다. 

황당하다는 느낌이 담긴 어조여서 나는 쓴웃음 짓고 말았다. 알 것 같았다. 

건강하라고 장어 사 먹이는데 탄산음료를 물처럼 마셨으니 아버지의 의도가 도루묵이 되어버린 것 때문이리라.






5


담백해서 아주 맛있는 장어를 '얻어먹을' 때보다, 기름져서 매우 맛있는 장어를 '마음 편히 먹는'게 더 행복한 것 같다. 

마음이 편해서 사이다를 양껏 시켰다고, 그렇게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도 있지만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 안 해도 되는 사이니까.


져니는 생선회만 좋아하고 구이나 조림은 거의 좋아하지 않는데, 장어만은 회도 좋고 구이도 입맛에 맞는다. 

이렇게 비린내도 안 나고 고소하니까 찾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 싶다.


가족 식사 이후에 아버지가 포장으로 장어구이를 가져오셔서 또 한 번 보양식을 섭취했다.

현재, 그 덕분인가, 컨디션이 굉장히 좋다.


다 덤벼!


싸우면 이길 자신은 없지만 견딜 체력은 있는 것 같다. 든든한 뱃심으로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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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삶의 최대 청량, 강장제이다. 


-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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