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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04. 2020

보통날빔

시즌6-018











1


아침이 되자, 부지런히 밥을 먹고 씻은 후 어머니와 나는 남대문 시장을 갔다.

어머니는 남대문으로 쇼핑하러 예전에 자주 오셨었다는데 최근 수년간 남대문에 온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기억 속에 건물들과 상점가를 거닐며 어머니의 시선은 거의 모든 상점의 옷을 스캔하듯 훑어보셨다. 나는 이날의 나들이가 어머니의 기분전환 겸, 당신의 옷 구입을 위한 쇼핑이라고 생각했다. 




2


여기저기 훑어보시던 어머니는 한 상점에서 니트 티 한 벌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셨다.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주인과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 하는 어머니, 두 분 사이의 설전에서 어머니가 이기셨다. 그렇게 구입한 옷을 들고 어머니는 화장실로 가셨다. 그리고 나보고 입어보라고 하신다. 입어봤다. 제법 잘 어울렸다.


"어울리네. 잘 됐다. 그 상점에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상이 한 벌 더 있던데, 어때? 마음에 들면 그것도 사버릴까?"


나는 갈등하며 대답했다. 


"우리가 이걸 보고 살지 말지 모르니까, 주인분이 팔려는 마음에 에누리를 해줬겠지만 다른 한 벌을 더 사려는 건, 흡족해서 사는 거니까 에누리했던 그 가격으로 사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주인은 한 2천 원은 더 부르지 않을까요?" 


그러자 어머니는 답하셨다.




3


"다시 가서 살 때는 2천 원을 더 깎을 거야. 그 가격이 아니면 안사고 만다고, 팔 거면 그 가격에 달라고 할 거야. 지금 가서 흥정하면 나는 2천 원 더 깎은 가격으로 살수 있어."


흥정에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흥정 능력이 신기하고 놀랍고 우러러보게 되더라. 하지만 너무 깎는 게 아니시냐고 여쭸더니 하시는 말씀은,


"그 사람들도 정말 안 남으면 안 팔아. 하지만 파는 건 남는 게 있으니까 파는 거야."


수십 년 상업에 종사하시던 어머니의 손익에 대한 사고 판단 능력과 나의 판단 능력은 결도 질도 무게도 방향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흥정보다 정찰제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흥정이 싫어서가 아니라 흥정할 줄 몰라서 그냥 곧이곧대로 값을 치르는 사람이다. 보통 이런 사람을 호갱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호갱은 아니다. 왜냐고? 나는 뭐든 거의 안 산다. 사는 일이 별로 없으니 값을 치를 일도 없어서 상대적으로 바가지 쓰는 일이 적다. 그리고 내 구입물품들은 거의 다 정찰제 제품들이라서... 뭐, 그렇다. (-_-)a


아무튼 오랜만의 남대문 쇼핑은, 어머니의 안목으로 발견한 옷을, 어머니가 에누리 능력을 발휘해 가격을 낮춘 뒤, 어머니의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값을 치른, 당신 옷이 아닌 '내 옷'을 마련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4


집에 돌아와 잠시 숨돌리고 있자니 택배가 도착했다.

지난 새벽, 잠 못 드시던 어머님이 그 새벽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얼른 나와 봐."라고 하시길래 난 최소한 유리병이 깨졌다거나 뭘 찾아야 한다거나 그런 일이 생긴 줄 알았다.


거실 tv에서 홈쇼핑 겨울 코트 판매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저거 어때?"

"예쁘네요."

"사주면 입을래?"

"네."

내가 패셔니스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옷에 영 관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게다가 사주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주문한 그 코트가 택배로 도착했다. 


남대문에서 사온 니트, 바지, 홈쇼핑에서 구입한 코트.

겨울 외출복 1set가  완성되었다.


우리 어머니, 문제다.

내가 어머니를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생각해보라, 안목도 높으신데  원단을 구별하시는 능력까지 갖추셔서 옷의 품질과 마무리 작업까지 잘 되었나를 꼼꼼히 살피시는 세심함까지 갖추셨다.

이러니 문제가 아닌가. 그런 안목과 능력과 성품으로 예쁜 옷을 알아채고 골라서 나에게 입히시면, 나는,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너무 고마워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난 도도하게 독야청청하고 싶은데 어머니께 감사한 나머지 순한 양처럼 굴게 되지 않은가. 문제다 문제, 큰 문제일세, 참 큰일이 아닐 수 없다.




5


설빔도 명절빔도 아닌 '새해로부터 3일 지난 평범한 날 <빔>'이 마련되었다.

아이 정말. 별 날도 아닌데 막 옷 사주시고... 이것 참, 우리 어머니, 정말 참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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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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