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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r 28. 2020

총아

시즌6-029





1


작년 11월 말에 구입한 표는 올 1월에 열리는 전시회 티켓이었다.

1월은 이래저래 바빠서 못 갔고 2월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하기가 꺼려져서 못 갔다.

유효기간이 3월 말까지로 연장되긴 했으나 어쩐지 못 갈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외출을 준비하고 있자니 어머니가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셨다.


"자가용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로 갈 거면서.. 사람들이 지하철도 안 타고 다닌다는데... 

다들 모이는 거 피하고 조심하는데.. 가야겠니?"


마음이 약해졌다.

이번 주 내로 안 가면 모처럼 저렴하게 구입한 표가 소용없어진다.


정말 재빠르게 전시회만 보고 쓱 올 건데 설마 내가 걸리겠어?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외출을 해버리려고 그랬다. 그러나..


안 걸린다고 어떻게 확신해? 신의 총아라도 돼?


...라는, 더 납득하기 쉬운 생각이 들었다.






2


소심한 축에 속하는 져니, 일단 3월 말까지 코로나의 추이를 보고 있기로 했다.

티켓을 여차하면 환불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전시회의 도록 패키지 상품을 발견했다.

어차피 전시회 도록 사는 건 취미니까 하나 구입했다. 그렇게 도록을 팔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전시회를 못 보게 된다면 도록으로라도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까. 





4


부모님과 설탕 찍어 가래떡을 베어 물고, 요즘 핫한 달고나 커피도 만들어 마시고, 

살이 실한 꼬막무침을 반찬 삼아 점심 먹고, 그렇게 쉬며, 놀며, 살짝씩 먹다 보니 뉘엿 해가 지려고 한다.


요 며칠 일해도 일한 것 같지 않고, 놀아도 논 것 같지 않았다.

마감을 정해두지 않아서 쉬엄쉬엄 일했더니 어중간하게 일하고 놀아도 화끈하게 놀지 못했다.

그래서 이날은 그냥 화끈하게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비록 전시회는 가지 못했지만 그 이외의 유희는 거의 다 했다.

쇼핑했지, 맛난 거 먹었지, 몸 편히 쉬었지, 부모님과 대화도 했지, 잠도 푹 잤다.


갑자기 내가 '신의 총아가 아닐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면 정말 세상 팔자 편하고 신에게 아낌 받는 '요정'급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요정들에게는 미안하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로 사과를 대신하겠다.)


하늘은 조금 어두워졌다.

어둑한 채로 방에 좀 더 있어봐야겠다. 내 스스로 요정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 한다.

지금으로써는 몸에서 빛이 좀 나는데... 아.. 노트북 화면 빛을 받아서 그렇구나.

에이, 아쉽다. 뭐, 요정들에게는... 달을 보라고... .

이상, 져니의 자잘자잘 스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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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매달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다 놓치고 만다. 

이번 달에는 이 행운을 놓치지 말라. 


-D.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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