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에서 만난 여자분이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예전엔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종교를 가지면서 내면의 어린아이를 치유하고 활기찬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종교를 가진 지가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약 1~2년 전부터 종교를 가졌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한 번은 자신이 종교를 가짐으로 인해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건강해졌는지를 이야기하며 나보고 종교를 알아볼 생각이 없는지를 물어왔다.
처음 접하는 것들은 대개 일상의 것들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준다. 거기에 종교의 박애와 포용력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포근한 느낌인지 상상이 간다. 그녀는 입문한 지 1~2년 차 신자. 한창 좋은 것들을 볼 때이리라. 그리고 자신이 접한 종교의 따뜻함과 감동을 생각하며 내게 권한 것이리라.
나는 그녀의 권장을 사양했다.
기독교 신자인 지인이 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교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런 그녀가 내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 목사님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다들 '네!'라고 하는데 저는 입 모양만 벙긋하고 소리로는 대답 안 해요. 예수님과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내가 진짜 그분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서 그녀는 "제가 진짜 신자가 맞는지, 하나님을 진짜 믿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만약 이 친구가 기독교를 권장하는 날이 온다면 한 번 숙고해 볼 의향이 있다.
초심자의 감동의 믿음보다 오랜 신자의 의혹 끝에 다다르게 된 믿음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종교를 가질 생각이 거의 없다.
또 다른 기독교 지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마다 그 자신의 가슴 안에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신다.'라고 했고 어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불교는 불성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했다. 종합하면 '마음 안에 깨어있는 건강한 의식이 살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종교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종교를 갖는 데에는 관심이 없지만 종교적인 건강한 삶 살기에는 호기심이 많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할 것이지만 강좌에서 만난 여자분의 종교에 대한 권장은 아무래도, 앞으로도, 여전히도 사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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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
-스펜서 (H. Spe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