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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n 06. 2020

아버지 아들

시즌6-038




1


아버지께서 폰 사용법을 물어보셨다.

그게 단순히 '폰을 진동으로 하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문자가 올 때 소리와 진동이 동시에 들린다. 진동을 뺄 수는 없느냐?'하는 질문을 하셨다.

잠시 정신이 멍했다. 

나에게는 소리와 진동이 동시에 울리든, 소리만 울리든

호불호의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는데, 그런 세세한 설정에 신경이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세세한 취향의 소유자 같다,는 느낌이다.




2


그런가 하면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무렵, 오빠는 모 회사의 폰을 구입했고 나도 삼성의 플립 폰이 생겼다.

나는 은색의 자그마한 내 폰이 너무 좋았고 왠지 오빠도 내 것이 더 좋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 에피소드로 오빠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어느 날 오빠는 내 폰을 잠시 보자고 해놓고는 숫자 버튼을 하나씩 눌렀다. 1에서 0까지를 누르면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아했는데, 오빠가 그런다.


"카! 소리가 달라. 소리가 더 영롱해. 안 그래?"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오빠의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버튼을 누를 때 발생하는 '삐'거리는 전자음이, 오빠의 폰보다 내 것이 더 맑고 영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화만 잘 되면 되지 싶었는데 버튼의 음색까지? 

그런 차이까지 발견해내는 오빠를 보면서 누굴 닮아서 섬세할까를 생각했었다.

이제야 알았다. 오빠는 아버지를 닮았다.




3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전에는 내 일과 감정이 중요해서 온통 관심이 나 자신에게 쏠려있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가족에게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제야 철드는 것 같아서 너무 늦은 감을 느낀다.

'늦은 때란 없다잖아.'라며 입장을 변명 가능케 하는 좋은 말을 끌어다 내세워 본다.




4


근데, 나는 누굴 닮았나?

얼굴은 아버지, 장 건강은 어머니, 식성은 두 분 다.

흠..... 확실한 건, 두 분이 내 부모님인 건 확실하다.

뭐, 보통 예뻐하시는 게 아니라서.

크흣흣!(격한 기쁨이 있지만 수줍어하는 모양새의 웃음이다.)




5


아버지 폰을 들고 소리. 진동의 설정을 변경해드리면서, 코로나 피하느라 올봄 마땅한 봄꽃 놀이도 못 갔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건 좋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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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이 아니고, 

또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가장 힘이 센 사람이나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다.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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