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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l 11. 2020

동대문 방문

시즌6-043









1


동대문 종합상가에 갔었다.

종합상가 신관 4층엔 짜치천을 파는 곳이 많다. 

말이 짜치천이지 (아마도) 대량 판매를 하고 남겨진 몇몇 롤의 천을 파는 곳인지라, 구매가 한정된 짜치천보다야 더 마음껏, 더 넉넉히 구입할 수 있는 것 같다.



한 달전부터 어머니는 여름 바지가 없다 시며 천사러 가자고  내게 말해두신 터였다. 

마침 시간이 맞아떨어진 어머니를 모시고 종합상가로 갔다. 어머니는 무아지경으로 천을 살피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외로워졌다.

나도 천의 두께감과 질감 정도로 각각의 옷감을 분별은 할 수 있으나, 그 천들이 어떤 성향을 가진 천인지 잘 모른다. 

소량의 천을 태워보면 연기 냄새로 성분 추측도 일부 가능하다. 그렇다고 천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불씨를 켜는 게 가당키나 하겠나.

여하튼, 어머니는 당신만의 안목으로 천을 살펴보고 골랐다. 


"저도 좀 알려주세요."


"나도 잘 몰라, 만져보고 감으로 아는 거야."


이러시면서 또 천 선별에 박차를 가하셨다. 어머니는 상점들 속에서 흡족한 몇몇 옷감을 발견하셨다. 

그날 상점들 내부에는 계절이 요구하는 옷감들로 즐비했고 어머니는 물 만난 고기였다. 

네 번째 천을 구입하시겠다고 집어 들었을 때에는 내가 만류했다. 

한 번에 네 벌을 재단하자면, 바닥에서 작업해야 하는 내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다소 충동구매이신 듯해서 만류했으나 어머니는


"다음에 오자고 하면 안 올 거잖아. 왔을 때 사둬야지."


...라고 하셨다. 

뭔가 불효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옷 만들기에서 제일 재미있는 재봉질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집에 있는 재봉틀은 어머니 손길만 받아들이는 차별쟁이) 달리 옷감 사러 가고픈 마음이 안 든다.

나중에 가정용 재봉틀이라도 장만해야 재봉에의 의지가 재점화할 듯하달까.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다음 동대문 방문은 그리 먼일은 아니게 해야겠다.






2


조금씩 방을 정리하고 있다.

책을 여기저기 쌓아두면서 덩달아 물건도 여기저기 놓아두었더니 점점 방의 풍경이 어수선해지고 있다.

한 번에 다 정리하기보다 조금씩 정리할 생각이다.

우선 목표는 이러저런 바닥에는 물건을 내려두지 않는 것이다.

바닥에 독서대나 화이트보드를 내려놓고 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기분상으로는 발 디딜 틈이 없게 느껴진다. 

책상 위나 좌탁에도 되도록 올려놓는 물건이 없도록 해야겠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을 할 수 있다던데 그 의미가 정신적 비움을 지칭했을지라도 물질적인 상황에도 해당되는 말이니 한번 비워봐야겠다.




3


어머니가 자꾸 내 방문을 열어보신다.

아까 한창 작업 중일 때 오셔서 '이 천에는 이 옷본을 그려달라.'라고 내게 언질하고 가셨다. 

나는 작업이 끝나면 하겠다고, 새벽쯤에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며 하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벌써 세 번째 어머니는 슬며시 문을 열어서 내가 작업을 하는지 아닌지를 살피신다. 

한시라도 새 옷을 지어 입고픈 마음이신가 보다. 

그 행동이 보여주는 바가 '얼른, 빨리, 서둘러' 같은 뉘앙스로 귓전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내 웃음을 촉발시키셨다. 한참을 웃었다.




4


이제 어머니 여름 바지를 위해 옷본을 그리고 재단하러 가야겠다.

예정보다 7시간 이르게 시작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승리하셨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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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새것일수록 좋지만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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