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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19. 2020

치킨과 마스크

시즌6-053






치킨을 사 먹기로 했다.

전화로 주문을 하고 10분 뒤에 출발해서 손수 받아올 생각이었다. 

옷 입고 모자 눌러쓰고 카드와 폰을 챙기니 얼추 10분이 흘렀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별생각 없이 얼른 받아올 생각으로 급하게 나갔던 것 같다.

치킨 집에 들어가니 여자 직원분이 머뭇머뭇한다.

영문을 몰라 갸우뚱하는 나에게 그분이 조심스레 말하길...


"마스크...."


나는 화들짝 놀랐다. 마스크를 안 하고 온 것이다. 

어쩐지 오는 도중에 사람들이 나를 한 번씩 쳐다보더라. 

그냥 으레 바라보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꼭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가 없어서였나 보다. 

아마 그들은 말을 안 했어도 속으로 지적을 하고 난리였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면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고 멋쩍어진다.

여하튼 이 직원분은 내가 난색을 표하자 다시 말했다.


"마스크 하나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마스크 한 장을 받아들어 착용하면서 나는 멋쩍음에 말이 많아졌다.


"어쩐지... 방금 집에서 나오는데 기분이 상쾌하더라고요, 뭔가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네, 했는데 마스크를 안 해서였군요."


내가 말하는 게 들렸는지 주방 쪽에 여직원 한 분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나를 힐끗 보았다. 눈 모양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주신 여직원도 내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쑥스러워하니까 긴장이 풀리셨는지 '썰'을 풀기 시작하셨다.


어떤 분은 술을 마신 후 마스크를 안 하고 오셔서 착용해주십사 요청했는데도 욕을 하면서 싸움을 하려 들고, 

어떤 사람은 잠깐인데 뭘 그러냐고 그러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아침에 나갈 때부터 안 하고 나갔다가 퇴근하면서 치킨 사들고 가는 거라며 마스크를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등등..


진상 손님이 꽤 많았나 보더라. 마스크를 안 하고 간 것은 내 잘못이긴 하지만, 그녀가 언급하는 예를 듣고 있자니, 나는 그래도 번듯하게 예의 있는 손님축에 속하는 듯하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치킨을 받아 가며 나는 여직원 분과 주먹 부딪치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스크 안 쓰고 나가서 식겁했다가 그래도 무안하지 않게 잘 받아준 그녀가 고맙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었기에 다음에도 또 갈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집 안에만 있어서, 어쩌다 나가려고 하면 자꾸 마스크를 깜박한다.

앞으로는 마스크 꼭 쓰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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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운명의 포로가 아니라 단지 자기 마음의 포로일 뿐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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