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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26. 2020

앞집 아주머니

시즌6-054




1


앞집 아주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벗이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아주머니에 대한 염려를 내비치셨다.

젊은 시절 정확하고 야무지기 이를 바 없는 그 아주머니가 이제는 영리함이 좀 덜해지고 통통하던 손도 살이 다 빠져서 작아져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하시더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하셔서 어머니는 너무 놀라 "얼른 병원에 가보시오."라고 권유하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그런 현상이 있으면 득달같이 병원에 갔을 사람인데 그냥저냥 있는 걸 보니까 놀랄 수밖에 없으셨단다.


"손녀가 대학 나와서 이제는 일하고 있는데 어제 손녀 보러 딸네 집에 갔다는구나. 손녀 용돈 주러 갔다 왔대. '성인인데 용돈을 1만 원을 줬을 리는 만무하고 얼마나 줬소?'라고 물으니까 '응, 30만 원.'라고 하는 거라.

그이네는 부자야, 돈이 많아. 자기 몸에는 1만 원짜리도 잘 안 붙이면서 손녀는 끔찍이 예뻐서 그렇게 주고...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안 쓰고, 그러면서 총기는 둔해지고, 그렇게 늙어가는 게 보기가 안타까워."





2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앞집 아주머니는 집에서 혼자 요래저래 요리하시면서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가져오신 떡이며 콩물을 나도 맛있게 먹은 적 있었는데 그게 아주머니의 핸드메이드 작품인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

특히 아주머니 표 콩물은 비리지 않고 너무 고소해서 시중에 파는 두유와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아버지도 나도 무척이나 맛있게 콩물을 마셨었다. 


그런가 하면 아주머니 집 마당 감나무에 떫은 감이 열리는 데 한동안 매년 가을이면 땡감이 서너 개 달린 나뭇가지를 가지 채로 꺾어 우리 집에 주시고 가셨다. 그러면 그 땡감 나뭇가지는 내방 벽에 걸린 채 겨우내 말랑해지다가 결국 연시가 되어 수저로 파 먹히는 간식으로 화해 수명을 다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기억인데도 아주머니의 그 나뭇가지를 받으면서 어떤 가을의 정서, 서정성, 시심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절 초라한 달력 걸어놓은 못에 땡감 나뭇가지도 걸어놓고 뭔가 취한 사람처럼 감나무를 스케치북에 그려보고 혹은 오랫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그랬었으니까 말이다. 



3


더 과거로 내려가면 바쁘신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시느라 나와 잠시 놀아주시기도 한 분이셨다. 물론 나는 내가 아주머니에게 예쁨 받는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나는 말수도 없이 가만히 한자리에서 노는 아이여서 였을 것이다. 돌봐주는 데에는 힘을 많이 빼앗기지 않을 테니 잠시 맡아 주자,라고 생각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여하튼 그때엔 아주머니와 나는 조금 친하기도 했었다. 





4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더니 나, 부모님, 오빠, 아주머니 가족 모두 나이를 공평하게 더 가졌다.

상황과 기억도 시간을 먹는다.

그저 한자락 기억일 뿐인데 블러툴 처리가 되어 아련하게 추억이 되어버린다.

떡, 콩물, 땡감 나뭇가지, 놀아주시던 아주머니는 [아주머니] 카테고리 안에 정렬되는 추억 목록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주머니가 오늘 낮에 검사받으러 병원 가신다고 하던데 가혹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길 바란다. 

모쪼록 아주머니가 건강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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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쉽게 절망하여 포기하면

마음까지 헤친다.


-키에르 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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