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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Dec 12. 2020

몇 장? 얼마?

시즌6-065





1


아버지께서 지폐 다발을 주시며 몇 장인지 세어보라고 하셨다.

지폐를 휘어잡고는 헤아려봤다. 19장이었다.


"딱 맞지가 않는데요. 열아홉 장. 한 장이 비어요."


라고 말하며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헤아려봤다.

역시나 19장이었다.

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지폐 다발을 가져가셔서 세기 시작하셨다.


"봐라. 몇 장인지."


그러시며 숫자를 소리 내어 부르시며 장수를 헤아리셨다. 

옆에 있던 나도 아버지의 숫자 소리에 맞춰 같이 헤아렸다.

그리고 동시에 마무리했다.


"스물!"


이번엔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다시 세어봤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딱 20장이었다.


"어? 정말 열아홉 장이었어요. 왜 그랬을까? 뭐지? 손가락 지문이 닳아서 그런가?"


그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한 장 삥땅 하려고 모자란다고 한 거 아냐? 21장을 줘 볼 걸 그랬어. 그랬으면 한 장 빙땅하고 20장이 맞는다고 하는지 어쩐지를 지켜볼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가 풋 웃으셨고 나는 잠시 멍하다가 웃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아버지의 본심인가 싶어서 섭섭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웃으시는 걸 보고야 농담임을 알았다.

우리 아버지는 어쩐지 져니 놀리는 재미로 사시는 것 같다.

매번 당한다. 쳇.




2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공기압 다리 마사지기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12월에 의미 있는 날짜가 있어서 그날에 맞추어 구입, 선물하려고 했는데 그날이 되기도 전에 두 분 모두 다리가 붓거나 아프거나 해서 병원을 찾아가시니 나로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기념일? 개뿔, 이벤트가 중요하니? 현실이 중요하지. 그냥 얼른 사용하시게 바로 주문하자구.'


그래서 급히 웹 쇼핑 후 제품 선택, 결제를 했다.

그러나 선물을 그냥 드릴 수는 없었다. 마음을 보여야 진짜 선물이지.

그래서 편지를 썼다. 

흐드러지게 글빨을 나부껴 기쁨과 눈물의 감동, 현실적 환희가 담긴 편지를 쓰고 싶었으나.... 그런 글빨이  있었다면 내가 지금 작가가 되었겠지, 나는 그저 담담하게 몇가지 일화를 담아서 역시나 잔잔한 편지글을 적었다.


그 글을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피식 웃으시는 걸 봐선 약간 성공적인 편지글이었던 것도 같다.

읽으신 후 아버지는 마사지기를 보시면서


"5만 원짜리 치고는 괜찮아 보이네."


...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곁에서 이번에도 풋 하고 웃으셨다. 

요즘 세상에 새 제품으로 5만 원짜리 전기기계를 어디서 팔겠나.

아버지는 빤히 그 이상의 가격인 것을 아시면서 떠보시는 말씀을 하신 거다.

그걸 아는 나는 입을 앙 다물고 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떠보지 마세요. 얼마인지 말 안 할 거라구요.




3


겨울이 깊어간다.

날은 추워지고 코로나 때문에 택배 기사님들을 대면하는 것에도 경계심이 발동해 심적으로 더 춥고 경직되는 기분이다.

가족과 나의 안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 뿐이리라.

갑갑증을 느껴도 그냥 웬만하면 참아야지, 한다.

코로나 사태로 고생하시는 의료업계 종사자분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너무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런가 하면 감사하다. 편히 지낼 수 있는 게 그분들의 노고 덕분이니까.

어서 코로나의 세를 제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래야 다들 편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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