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82
1
나의 노트북, 안나가 세상을 떠났다.
메인보드가 손상된 녀석은 오래된 기종이라 교체할 메인보드가 단종되었고 중고로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교환하여 사용한다 해도 다른 부품들 역시 노후화되어서 기대수명을 길게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기사님 말씀으로는 노트북의 기대 수명은 4~5년쯤이란다. 냉장고의 경우는 10년을 생각하고 제작한다고 했다.
"고객님 노트북의 경우, 2011년도 모델로 무려 10년을 사용했으니 냉장고에 빗대어 계산하면 20년을 사용하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말해주시는데, 그럼에도 알차게 잘 썼으니 기쁘다, 라기 보다 아쉽고 속상한 느낌이 컸다.
2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은데 어째서 노트북은 새것이 좋을까?
나는 셋 다 좋아하지만 때로는 말없이 내 마우스 컨트롤에 따라 움직여주는 노트북에도 각별한 마음을 느낀다.
노트북 부품을 빨리 단종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고 기대수명은 15년간쯤이었으면 좋겠다.
3
제품을 만들 때 기대수명을 생각하고 만드는 모양이던데, 스마트폰은?
스마트폰도 기대 수명이 있을 텐데 그 수명은 약 2년쯤일까?
농담처럼 '2년 사용하면 기기 자체에서 파괴 프로그램이 작동하게 되어있는 거 아니냐'라고들 했었다.
정말 2년, 길어도 3년이면 다들 폰을 교체한다.
음모론이겠지만 가끔은 '파괴 프로그램... 진짜인가?' 싶기도 하다.
4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은데 왜 스마트폰은 새것이 좋은가?
나는 셋 다 좋아하지만 폰만큼 친근하게 스킨십하는 녀석은 없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볼을 부비부비, 우리는 절친한 사이이다.
녀석이 고장 나면 되게 허전할 것이다. 녀석의 기대수명이 10년 이상이었으면 좋겠다.
5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무탈하게 잘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 같은 친구라 할지라도 사람마다의 분위기, 뉘앙스 그런 것들은 좀 다르다.
간만에 통화를 하다 보니 한동안 잊혔던 그 친구의 뉘앙스가 전달되어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즐겁게 과거로 회귀하고 온 기분이다.
6
노트북은 내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장치라서 좋고, 폰은 통화 기능을 포함한 다른 편리한 기능이 많아서 좋고, 친구는 세월과 정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다.
7
노트북, 폰이 새것이 좋은 것을 왜 나라고 모르겠는가.
최신 기기가 편리한 건 나도 잘 안다.
그저 환경 문제도 심각한데 자꾸 새 걸 만들기보다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와인과 친구, 노트북과 폰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다,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
8
말이 길어졌는데, 슬프다.
내 사랑하는 노트북 안나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