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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Dec 18. 2021

자잘스토리 7 - 003 - 아버지의 웃음







1


져니는 외출을 싫어한다.

나갈 때 시간을 따져서 맞춰 준비하고 옷과 신발을 고르고 움직여야 하니까.

다 차치하고 그냥 집안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




2


아버지는 가끔 져니에게 막걸리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신다.

그날 마침 져니가 외출 일정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사 들고 온다.

그렇지만 직선 귀가로에서 벗어나 마트 쪽으로 좌회해야 하므로, 즉 좀 더 걸어야 하므로 귀찮아지기에, 져니는 툴툴거린다.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툴툴거리고 아버지 얼굴을 대면하면서도 속으로 쬐끔 툴툴거린다.


이건 외출 일정이 있을 때의 일이고, 집에 가만히 있는데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시면 정말 화가 난다.

꼬맹이 때의 져니는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 없는 소심쟁이였지만, 지금의 져니는 머리가 굵어서 가끔 아버지 심부름을 거부하기도 한다.

처음엔 아버지가 기가 막혀하셨는데 결국엔 조금씩 심부름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한 번은, 심부름을 싫다고 했다가 좀 죄송한 기분이 들어서 뒤늦게 막걸리를 사 왔더니, 말 안 듣는 딸 대신 아버지도 막걸리를 사 오셔서 막걸리 풍년(?)이 드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에게 져니는 예쁜 자식이면서 심부름도 안 듣는 괘씸한 딸이렸다.




3


져니의 어머니는 천성이 부지런하신 분이다. 워낙 부지런해서 몸이 가볍고, 몸이 가벼워서 점점 더 부지런해지시는 것도 같다.

아무튼 어머니는 당신이 필요한 일은 당신이 다 알아서 하시는 분이라서 심부름꾼이 따로 필요 없는 데다가, 아버지의 음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 때문에 당신의 남편이 져니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시면 곁에서 져니 편을 들어준다.


"그만 좀 드시오. 그렇게 마시고 싶으면 당신이 갔다 오시구려."


아버지의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4


요새 어머니가 발목을 삐끗하셔서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발목에 붕대를 감고서도 들썩들썩 움직이시며 집안일을 하시는 어머니였지만 아무래도 장을 보러 나가는 것은 무리이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져니에게 메모지를 넘겨주며 장을 봐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가기 싫은 마음을 억지로 다잡고, 어두워지면 나가기 싫어지니 얼른 나갔다 오자고, 스스로에게 설득에 설득을 더해 겨우 나갔다 왔다.

장을 보고 왔더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실에 계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져니야, 저쪽 농협에 가서 콩 한 봉지 사와라."


"거기까지 가라고요? 에에~ 안 가요, 안 가."


"지금 가야 살 수 있을 거다. 내일 되면 다 팔리고 없을 지도 몰라."


"에에~~ 나 겨우 나갔다 왔는데 또 나갔다 오라고요? 처음 나갈 때부터 말씀을 하시던가, 나 또 못 나가요. 안 가요, 안 가."


내가 질색을 하며 완강하게 거부하자 어머니는 '어쩌지?'하는 표정이셨고... 내가 주목한 것은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아버지가 "크헐헐헐~"하고 내내 웃으시는 것이었다.

나의 한결같은 외출 거부가 근성 있다고 여기시며 웃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거부당할 때 도와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같은 상황에 처하시자 고소해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아버지가 웃는 그 모습이... 뭐랄까.. 내내 미스터리하고 인상적이었다.




5


져니로서는 전자라면 웃음이, 후자라면 미안함 섞인 웃음이 날 따름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죄송하다.

이게 다 집이 쾌적해서이다.

집안이 후줄근하거나 분위기가 우울하면 져니가 바깥으로 나돌았겠지.

그러나 너무 쾌적하고 포근하고 분위기도 화목하니 집콕할 수밖에.

아무튼,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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