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실에서 아버지가 부르셨다.
"져니야~!"
"네"
내 방에 있다가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옥상에 올라가서 고추장독 뚜껑 열고 오너라."
그렇게 했다.
2
얼마 후 아버지가 나를 또 부르셨다.
네, 하고 거실로 나가니,
"모바일 뱅킹해야 하는데, 나 하는 것 좀 봐라, 옳게 하는지."
옆에서 지켜 서서 하시는 것을 봐드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3
얼마 후 아버지가 다시 "져니야!"하고 부르셨다.
"네" 하고 얼굴을 내비치니,
"폰에서 업데이트하라고 떴는데 이게 무슨 업데이트니?"
봐드렸다. 별것은 아니었다. 해결해 드리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4
짧은 시간 동안 세 번을 불려나갔으니 더 이상 찾으실 일이 없겠거니 했다.
그런데 작업을 준비하고 시작하려고 할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져니야~!"
좀 화가 났다. 너무 자주 찾으시는 것 아닌가.
이번엔 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요~!"
그렇게 대답하고 거실로 나가니 부모님이 식탁에서 식사하시려던 중이셨다.
아버지 왈,
"아빠 밥 나눠 먹자."
10여 분 전에 어머니께서 "점심밥이 두 그릇 정도만 있네."라고 하시길래 내가 라면 끓여먹겠다고 했었다. 아버지가 그걸 아시고는 부르신 것이었다.
"내 밥이 많아서 나눠먹자는 게 아니라, 사람 정이 그렇지, 어떻게 너만 라면 먹으라고 하냐."
그러시며 나눈 밥을 슥 밀어놓아주신다.
보릿고개 시절도 아니고 밥 나눠먹고 '사람 정' 이야기가 나오고...
사실 라면을 먹기 싫었던 터라.... 아버지의 그 말씀이 다소 색다른 기분을 주었다.
짜증 나던 마음이 쏘옥 들어가고 아버지를 향해 정다운 마음이 쑤욱 나오는 느낌이랄까.
5
아버지와 나는 밥을 먹다가 양이 모자라서 동치미를 먹기 시작했다.
"동치미 무를 세 조각쯤 먹으면 배가 찰 거다. 하나 더 먹어, 이거 크다, 자."
아버지는 무도 내 쪽으로 밀어놓아 주셨다. 자꾸 보릿고개가 이랬을까,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정다운 느낌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웃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왜 그렇게 훈훈한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 라면 먹기 싫은 그 심정을 알아주시고 좋은 건 콩 한 쪽도 나눠먹으려고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씀이 감동적인 게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모의 보릿고개를 체험하며 알게 된 것은 '밥이 모자랄 때는 동치미 무를 먹되 3조각은 먹어야 배가 찬다.'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