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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an 22. 2022

자잘스토리 7 - 008 - 지하철에서의 한때-2






남자는.. 몰래 잘못하다가 엄마에게 걸려서 혼나기 직전인 아이처럼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풀이 죽어있었달까.


(전편에 이어서 계속....)





2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 남녀가 서로 보이지 않는 감정을 얽고 있을 때 나도 정신 사납긴 마찬가지였다.

얼른 고개를 숙여 드라마에 시선을 꽂았다.

드라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정리해 보니 남자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걸 알아챈 여자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던 것.

그 이외의 다른 설명은 가능치 않았다.

불편한 마음에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길까 싶었지만 그러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걸?


나는 다시 집중해서 드라마를 봤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곧 빠져들 수 있었다.

간간이 남녀 중의 누군가가 쳐다보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문제는... 드라마가 끝이 났다.

일 보러 가면서 앞부분 40분을 봤기에, 일 끝나고 가는 그때엔 짧은 분량이 남아서 금방 끝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자 시선 둘데가 마땅치 않아졌다.

고개를 들자니 그들 중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것만 같아서 뻘쭘한 기색으로 폰 안의 mp3를 재생했다.

어쨌든 눈 둘데를 찾아야 했다.

정면의 그들을 피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더 어색했다.

할 수 없이 앞을 보되 시선은 좀 위쪽을 향하며, 그러나 딱히 볼 것 없는 위쪽을 보며 시선을 또렷이 꽂는 것도 이상하니 살짝 초점을 풀었다.

달리 말하면 동공을 풀고 흰자위로만 상황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봤다. 남녀가 싸우는 기색은 없었다.

여자와 남자의 팔은 겹쳐져 있었고 흰자위로 보기엔 여자가 자신의 손을 얹어서 남자의 손을 잡은 것 같았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가끔씩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음악 재생을 멈췄다. 다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편이 저 남녀를 의식하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재생한 드라마는 아는 내용이라 심드렁했고, 그보다 예민해져버린 나머지 검은 눈동자는 폰에 꽂혀있으나 흰자위는 여전히 남녀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역에 다다라 지하철이 감속을 하자 그 남녀가 일어섰다.

와아~ 드디어 저 남녀가 내리려나 보다, 절로 쾌재가 불러졌다.

너무 불편했었다.

키가 클 것 같다고는 생각했으나 생각 외로 그들은 더 늘씬했다. 남자는 180cm가 넘어 보였고 여자도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168cm는 되어 보였다.

둘 다 얼굴도 예쁜데 늘씬늘씬 하기까지, 정말 재수 없는 선남선녀로군, 얼른 가라!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서 크게 반바퀴 돌아서 몇몇 사람들 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30cm 옆에 섰다.

그냥 자신들의 자리에서 두 발자국 옆으로 끼어들어가서 서면 출입문이 있는데 굳이?

그들은 내 근처에 그렇게 잠시 머물다가 문이 열리자 나가는데, 나가기 직전 여자가 말했다.


"별로지?"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을 해석해 봤다.

어쩐지 여자가 '이 여자 어때? 가까이에서 보니 별로지?'라는 의미로 말한 것 같았다.

여자가 남자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다른 여자 쳐다보는 남자에게 따져 묻기보다 손을 잡아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고 짜증 내기보다 별로지?(물론 어디까지나 추측)라고 물어서 대답을 유도하는 것 하며 말이다. 여자가 여우처럼 예쁠뿐더러 여우처럼 지능적이다.

여자의 "별로지?"라는 말이, 내 추측대로 그런 의미라면, 상당히 기분 나쁜 말이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나는 정신승리를 하기로 했다.


저 예쁜 남자가 나를 쳐다봤다. 그건 내가 약간 호감형이어서가 아닐까?

참고로 나는 평범하게 생겼다. 인상이 좋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혹자는 부모님 사랑 듬뿍 받고 세상 걱정 없이 살아온 사람 같다고도 한다.

나도 내 얼굴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지만 들은 바를 종합하면 평온하고 착해 보이나 보다.

지하철의 그 남자에게 내 평온하고 착한 얼굴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그렇다면 내게서 어떤, 평온하고 착하고 순하고 여리며 어딘지 모르는 오묘한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그 여자가 남자에게 "별로지?"라고 물어야 했다면 그건 '별로였으면 이런 거 묻지도 않아, 저 여자가 네 취향이야? 별로라고 말해! 별로라고 말하란 말이야!'라는 뉘앙스가 아닐까?

나는 예쁜 남자와 여자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질투를 하는 것이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정신승리를 위한 귀결은 다음과 같다.


남녀는 대판 싸웠거나, 언쟁을 벌였거나, 감정이 상했거나, 살짝 언짢아졌을 것이다.


아... 그때 꼭 그랬어야 하는데 말이다. 크크흣!

사실 정신 승리를 위해 그랬기를 빌지만 또 그들이 결국에 결혼해서 잘 살기를 바란다.


수년 전 지하철에서의 한때를 회상해 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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