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스토리 7-017- 뭘 할 때 즐거워? - 샤워 편

by 배져니







1


씻는 걸 좋아한다. 다만 씻을 체력이 없어서 예전엔 잘 안 씻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샤워가 일상적이지 않았다.

그 시대 집들의 욕실은 조금 초라했고 외풍도 세고 아무튼 아늑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집에서 매일 샤워하는 게 보편적이지 않았고 대신 일주일에 한번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을 푹 불리고 때를 밀어 씻는 것, 그것이 더 보편적이었다.


그때 목욕이라는 것은 종갓집 며느리의 김장철이나, 5대 독자 아내의 제사상 차리기 같은 느낌이었다.

행사이자 노동, 딱 그랬다.




2


어릴 때 어머니와 나는 목욕탕에 가면 1시간 40분을 목욕했다.

어린 나는 근육이 여물지 않아서 힘이 없는지라 병아리 손아귀의 힘처럼 연약하게 내 팔다리를 쓱싹 밀뿐이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30여 분 가량을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기력이 쇠잔(?) 해져있었기에,

내 손은 병아리 손아귀도 아니고 메뚜기 손아귀 같은 힘으로 때수건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누질 한 번 쓱 하고 물 한 번 쏴아 부어 맞고 대중탕을 나가고 싶었으나 목욕비의 본전은 뽑고 나가야 했다.


하나의 의식처럼, 비누질해서 씻고, 뜨거운 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고 나와서 그 때를 밀고,

틈틈이 옆 사람과 때밀이 품앗이도 해야 하며, 머리를 감아 트리트먼트까지 한 뒤,

다시 몸에 비누 칠을 하고 씻고, 머리를 헹구고, 깨끗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욕탕 유리 출입문 앞까지 가져와 발에 부어 씻고,그다음 욕탕을 나온다....


... 이 과정이 1시간 25분 과정이고 나머지 15분은 옷 벗고, 입고, 화장품 바르는 시간이다.

집에 돌아와 목욕 도구를 제자리에 놓는 과정까지 헤아리면 얼추 2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그야말로 '행사'가 끝나면 후련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3


목욕을 다 하고 나서 집에 가 앉아 있노라면 슬며시 풍겨 나오는 비누 냄새가 꼭 살냄새 같아서 기분이 좋았고,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피부가 어찌나 화사하던지 나는 내 팔뚝에 얼굴을 갖다 대고 비비곤 했다.

그렇게 상쾌하고 좋았지만 정말 목욕을 1시간 반 동안 하는 것은 너무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4


세월이 좋아져서 이제 집안의 욕실은 깔끔하고 한 겨울에도 외풍 없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냉온수도 원할 때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씻는 것도 얼마든지 원할 때 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져니는 저질 체력 덕에 샤워를 한다. 때 불리고 미는 건 너무 체력 소모가 크다.

그냥 쓱싹 씻고 대신 다음날도 쓱싹 씻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쓱싹 씻는다.

누군가는 샤워를 매일 하면 때가 안 나와서 더 이상 안 밀어도 된다고 하는데, 내 보기엔 그래도 얼마간에 한 번은 때를 밀어주어야 하는 것 같다. 안 그럼 영 찜찜...




5


아무튼 샤워를 좋아하는 것은 마지막 이 순간 때문이다.

나는 주로 저녁이나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을 잘 말린 다음 머리칼과 잠옷 위에 향수를 뿌린다.

매번 뿌리지는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에만 뿌리는 편이다.

날이 더우면 상쾌한 향수를,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추운 날엔 좀 더 포근한 향수를 뿌린다.

그렇게 한 후 잠들면 왕의 침전이 따로 없다.

몸이 노곤노곤 풀린 채 깔끔하고 향기로운 기분과 감각이 더 양질의 꿈길로 인도해 주는 것 같다.

다음날 일어나서도 몸의 깔끔한 느낌과 향이 이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기분이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고 말이다.




6


여기서 글을 끝내면 매일 샤워하는 깔끔한 사람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겠지만 고백한다. 매일 샤워하지 않는다.


일단, 땀을 너무 많이 흘리거나 체취가 너무 많이 나는 게 아니라면, 자주 샤워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피부에도 표피 건강을 위한 유익균이 사는데 자꾸 씻어서 없애버리면 피부 건강에도 좋지 않다.


또 하나, 목욕에 비해 샤워는 물을 조금 사용하긴 한다. 그래도 '매일 샤워'는 왠지 물 낭비가 너무 많이 되는 것 같아서 좀 그렇더라.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 씻을 땐 씻어야 하지만 너무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하여, 져니는 피부 건강과 물 절약을 위해 샤워를 매일 하지 않으나, 저질 체력 때문에 목욕보다는 샤워를 선호한다는, 그리고 향수가 샤워 후를 좀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걸... (소곤소곤) 조용히 고백한다.

아무튼, 샤워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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