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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y 07. 2022

자잘스토리 7 - 023 - 어머니의 병실 - 1





1



어머니의 수술은 우리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늦잠꾸러기 나는 어머니 병실을 새벽 내내 깨어서 지켰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꾸던 화단과 텃밭을 관리하시면서 병원엘 다녀가시고,

오빠 내외는 수술날이 주 중이라 와볼 수는 없어서 공휴일 날 오겠다고 전하며 수시로 어머니의 상태를 물어왔다.





2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가족 삶에 있어서 엄청난 기여를 했는데 그 값을 제대로 받지는 못하셨다.

'마음으로 위하는 방법은 행동하는 것이고  그런 건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라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마음으로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 해도 과정의 노력을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어머니가 딱 그 상황이셨다. 가족을 위해 밥 짓고  살림하시고 일하셨는데 막상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말씀을 안 하시고 생색을 내시지 않으시니까.

나는 그저 당연한 것인 양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안락한 식사와 깔끔히 세탁된 옷, 잘 정리된 살림살이를 누렸다.

어머니는 알아주지 않는 무정한 딸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었으나 돌아오는 게 없어서 딸을 책망하셨는데, 그 책망의 말이,



"넌 정이 없는 것은 아닌데, 무심해."



라는 정도이셨다.

그렇다. 나는 무심했다. 당연한(?) 것을 두고 원더풀! 막, 그래가며 환호할 일은 없었다.

예전의 나는 어머니의 노동력에 대한 값을, 뽀뽀라던가 요리라던가 포옹이라던가 뭐 그런 돈 안 드는 애정 표현 같은 것으로도 치르지 않았다.

철이 없어 몰랐던 탓이었다.





3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헌신은 낙숫물, 무심한 나의 심장은 댓돌. 좀처럼 패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보니 얼추 구멍이 뚫리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 중요 요인이다.

헌신, 희생 같은 거 잘 못 느끼고 무심해도 결국 수십 년이 흐르고 나니 살아온 햇수와 얽혀서 가족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커지고 드디어 어머니의 노고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게 딱 어느 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백만 스물하나의 낙숫물과 백만스물둘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그 사이 순간쯤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4



어머니의 수술이 알려지자 온 가족이 파문이 일었다.

무뚝뚝하신 아버지도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당부하는 집안일을 성의껏 해내시고,

바깥출입 싫어하는 나조차 "안 와도 된다."라는 두 분의 말씀에도 기어이 병원을 향해 외출했다.

오빠도 자못 걱정이 되는지 전화와 메시지로 수도 없이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5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국민연금도 오래 많이 부으면 가치가 크게 올라간다.

어머니가 그간 행하신 마음 씀은 '사랑 연금'을 부은 것과도 같다. 어머니는 이제 고령, 수령하실 때가 되었다.

댓돌에 구멍 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지불을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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