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May 14. 2022

자잘스토리 7 - 024 - 어머니의 병실 - 2







1


어머니는 남에게 폐를 끼쳐하시는 걸 되게 싫어하신다.

남들이 당신 때문에 바빠지시는 걸 폐 끼치는 것이라 여기시는 것 같다.




2


병원에서 기력이 달려서 목소리가 잠기신 어머니 앞에 폰 벨이 울렸다.

어머니는 수신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여셨다.


"여보세요?"


"잤는가? 목소리가 왜 그러는가?"


"응. 졸았어."


"그래? 나, 자네 집 앞인데 올라가도 되는가?"


"나, 집 아니네."


"졸았다면서? 집이 아니라고?"


"응."


"그럼 어딘가?"


"어디 좀 왔어."


"그래? 알겠네."


이런 대화가 오갔고 '그래? 알겠네.'라고 하시는 여사님의 목소리는 여실히 삐치신 억양이었다고 하신다. 나는 걱정스레 여쭸다.


"오해 생기잖아요. 그냥 말씀하시면 병문안도 오시고 심심치 않아서 좋으실 텐데, 왜...?"


"오면 또 뭐 사들고 오고 그럴 텐데 부담스럽고 미안해서..... 퇴원하고 오해는 풀어주면 돼."


나는 새가슴이라 되도록 곧이곧대로 말하는 성격인데 어머니는 배포가 있으셔서인지 오해도 불사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상황을 이끌어가신다.

발생한 이 상황도 폐가 된다고 방문을 방지하기 위한 대응이셨던 것이다.




3


오빠가 공휴일이어서 어머니 병실에 왔고 그래서 오랜만에 오붓하게 네 식구가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느라 시끄러웠는데 4인실을 어머니 혼자 사용하고 계셨고 그런 와중에 식구가 다 모이니 우리 집 거실 한켠에 가족이 모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오빠와 아버지는 당신들의 스케줄이 있어서 나가봐야 했고 "괜찮겠어?"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어머니는 "혼자 있는 것도 아닌데, 뭘."라고 하시길래 내심 나를 든든해 하시나 싶었는데,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간호사도 있고 뭔 일 생기면 간호사가 의사한테 연락해서 올 텐데, 뭐. 어서 가봐들."라고 하신다. 어째서 난 언급 안 하시지?,하고 서운하려 할 때 "져니야 나 좀 일으켜봐."라고 도움을 요청하신다.

일단 기꺼운 마음으로 부축을 해드렸다.

근데 생각하니 모녀 사이에 폐는 아니지만 인정도 안 해주면서 뭔가 되게 막 부려먹는 느낌이라 속상하려고 그랬다.

에라이, 울까? 울어 버려서 관심 좀 끌까?




4


오늘 밤 10시 20분에 진통제 투여가 끝났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났을 뿐이라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을 터 아플 것 같은데 어머니는 진통제를 더 안 맞아도 되겠다고 간호사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간호사도 알았다고 상황을 괜찮게 보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저러다가 아파하시는 거 아닐까'하고 걱정되어 주무시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계속 의식하며 지키고 앉아있다.

현재 밤 11시 37분, 약기운은 보통 3시간 후 때부터 약해지는 것 같으니 좀 지켜봐야겠다.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건만, 어머니는 딸이기 때문에 폐가 된다고 생각지는 않으실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의 인연과 운명은 사랑으로 짜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섭섭하려던 마음이 편해졌다. 울려다가 안 울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7 - 023 - 어머니의 병실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