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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Nov 26. 2022

자잘스토리 7 - 052 - 1이냐 5이냐







1


오늘은 현금을 많이 들고 은행에 갔다.




2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회사와 계약한 업체에 돈을 갖다 줘야 했다.

그 회사는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었으나

그때는 인터넷 뱅킹이라는 말조차 생소해서 아직 웹뱅킹을 많이 이용을 안한 때였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일단 어음을 보내기로 했고 전달책으로 내가 지목되었다.

그 어음을 내 가방 속에 넣어, 내가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동한 끝에, 업체의 담당자에게 내가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에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어음이어서 누가 훔쳐 간다 해도

쉽사리 쓰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말이다.

내 수중에 1억짜리 어음이라는 게 너무 생소했다.


'어음에 적힌 동그라미가 몇 개인가?' 


헤아려보며 억 원은 동그라미가 8개가 줄 선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그 당시 마음에 우울함이 많아서 즐거울 일이 없었는데

1억 어음을 손에 들고 보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이 어음을 가지고 있다가 납치당하면

나는 적어도 1억 원 이상의 몸값은 되지 않을까?'


...라고 별스러운 생각으로 혼자 쿡쿡 웃었었다.




3


오늘 1억과는 연관성 없는 숫자의 현금을 가방에 집어넣고

은행을 향해갔다.

오늘의 기분은 상당히 긴장되었다.


그 옛날의 어음은 1억짜리라지만

현실성 없는 돈으로 내 돈이 아니었고

오늘 가방 속에 현금 액수는 어음과 비할 바 아니지만,

현실 속의 내 돈이다.




4


두둑한 현금을 가방에 넣고 이동하는 수십 분 동안 등에 땀이 났다.

날이 따뜻해서 그런 건지, 옷을 두껍게 입어서인지,

아무튼 긴장한 것만은 분명했다.

누가 투시력이 있어서 내 가방 안에 돈을 꿰뚫어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와 내 가방을 휙 잡아채 갈 것 같아서

겁도 좀 나고, 정말 땀도 났다.

이 정도면 소심해서 집 밖으로 한 발도 안 나가야 맞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소심한 데다가 집순이라서 집 밖으로 잘 안 나간다.




5


아... 말이 길어졌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나는 '1억 어음으로 내 몸값이 1억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나를 대변하지 못하며, 나는 돈으로 대변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돈이 아닌 그저 숫자로 표현하자면,

100,000,000라는 숫자에서, 앞서있고, 앞서있음으로 0의 존재를 현존하게 만들어주는

숫자 1이 되고 싶다.

빈 숫자 0이 1을 만나 꽉 찬 숫자가 되니까 말이다.




6


아무튼 미술이라는 재능으로 여성의 본을 보이신 신사임당 님.

신사임당 여러분을 안온한 은행에 모셔다 드려서 기뻤다.

물론 1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긴 하나, 오늘 같은 경우에는,

5라는 숫자도 참 매력이 있다는 느낌이다.

굳이 두 숫자 중에 고르자면...

음... 골랐냐고?

골랐다.

어느 것이냐고?

...비밀이다, 궁금해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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