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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Feb 04. 2023

자잘스토리 7 - 062 - 떡 썰기 대결






1


어머니가 내 방에서 2시간 이상씩 방송을 보고 가신다.

[대행사], [빨간 풍선], [불타는 트롯맨], [미스터 트롯] 등등...


방영 시간을 놓쳐서, 중간 회차부터 보시기 시작하셔서 앞 회차 것이 궁금하셔서,

늦은 밤에는 주무셔야 해서 못 보시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내 방에서 1시간은 기본, 최장 4시간 동안 다시 보기로 방송을 보신다.

며칠 전에는 낮 2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보시다가


"네 아버지 밥 해줘야겠다."


...라고 하시며 일어서셨다.

아버지의 허기를 떠올리지 않으셨다면, 아마 계속 '다시 보기'를 하셨을 것이다.




2


데스크 컴을 빼앗긴 것도 신경 쓰이지 않고, 

웹에 찾아들어가 방송을 켜드리는 것도 귀찮지 않다.

다만 시청하시면서, 특히 트롯 경연 방송을 보시면서,


"팀 전이네?

어우, 이쁜 애들끼리 팀이 됐네.

내가 이쁘다고 하는 애들이 한 팀이 됐어.

쟤는 노래 잘 불러, 어, 쟨 목소리가 좋아,

쟤는 착하게 생겼어..."


...라는...., 내 방에 해설 MC가 방문하신 줄 알았다.

그 MC 분은 내게 동의와 호응을 구하셔서 내가 진땀 뺐다.

대꾸를 안 하자니 섭섭해하실 것 같고,

맞장구를 치자니, 안 보는 방송이라 모르겠고,

다 차치하고, 나는 좌탁에 앉아 공부를 하는데 자꾸 물어보시니

당최 공부가 안된다.




3


"어구, 잘하는 것 좀 봐!"


지금도 곁에서 [불타는 트롯맨]을 보시며, 감탄하시며,

몰입하신 나머지, 초집중 시청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저 집중력! 시선으로 화면을 뚫으시겠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시는 듯.

요리할 때 칼질을 왜 하시나?

눈으로 한 번 쓱 가로질러 훑으면 다다닥 잘라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는 칼을 들고 떡을 썰어라,

나는 안광으로 떡을 썰겠다.'


...라고 어머니가 내게 제안하시면

절대적으로 거절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엄청 시선을 꽂고 화면을 보시는데,

그 모습을 목도하는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니와 떡 썰기 대결은 결코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한다.

특히나 뭘 걸고 하는 내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응하지 않겠'노라,

'내기면 했는데 도박이라 안 한다.'라고, '확률이 적으니 도박 아니냐.'라고,

그렇게 주장하며 단칼에 마다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장난 아니시게 엄청 뚫어지게 보신다니까.




4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불타는 트롯맨]을 시청하시며 눈빛을 쏘고 계시다.

딸내미가 관찰 중이라는 걸 모르시나 보다.

화면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자 어머니가 웃으셨다.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편해져서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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