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을 잘 못 잤는지 어깻죽지가 너무 아팠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선을 따라 쨍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급히 파스 한 장 붙여 처치를 했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통증이었다.
그 덕에 머리가 띵하고, 기력이 없어서 몸이 녹진녹진 녹아내려 침대에 붙어버렸다.
한번 내려앉은 몸은 일어나기가 어려웠고, 짜증이 났고,
홧김에 밥을 안 먹었더니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어제 밤부터 그냥 쓰러져 잤다.
도중에 여러 번 깼는데 기억나는 것만 5번이었다.
그렇게 계속 깰 거면 그냥 안 자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되도록 몸을 바로하고 어깨를 짓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계속 잠을 청했다.
2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붙어있던 파스는 효능을 다 했는지 피부와 부착된 부분에 별 느낌이 없어졌다.
대신 어깨 상태는 한결 수월했다.
일단 냉장고에 있는 먹거리를 하나 얼른 먹어치우고
당일 저녁에 가족이 먹을 간식을 만들었다.
새벽에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안방이나 아래층에 전달될까 봐
되도록 조심했지만 발생하는 소리를 어찌 막을 방도는 없더라.
나중에 어머니는
"그건 그냥 핸디 믹서로 갈지 그랬어?"
...라고 하시는 데, 그 소음은 당하게 될 사람보다,
발생시키는 사람의 '간땡이'를 더 쫄아들게 하므로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저는 좋은 사람이거든요.')
잡음도 제어해가면서 일정한 양의 간식을 만들어 놨다.
할 일은 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잠시 누운 뒤 몸의 상태를 가늠해 봤다.
팔 다리엔 힘이 있고, 뱃속엔 아까 먹은 음식물이 들어있어 든든하고,
목 언저리 어깻죽지는 살아낼 만하게 통증이 없다.
간밤에 죽을 듯 힘들고 아팠던 나는, 뭐 살아날 건 알았지만,
그래도 약간 감동적이게 다시 건강해졌다.
이때 떠오른 존재가 뭔지 아는가?
나는 언뜻 불사조를 생각했다.
나는 불사조처럼 죽어가다가 회생했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흠... 불사조는 뭔가 흐느적흐느적 힘아리가 없어보인다.
그저 오래 사는 것뿐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미안하지만,
아무튼 불사조는 되찾은 건강을 상징할 존재가 아니었다.
화라락 타오르는 그 불길 속에 사는 존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하고
사랑스럽느냐,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있었다.
분명 어릴 적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3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예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분명 맨땅에서 피는 괭이밥 꽃을 좋아했고, 12색 색연필과 동전 몇 개면 행복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꽃집에서 파는 송이가 굵은 화사한 꽃에 마음이 가고,
60색 색연필도 모자라서 계속 사들이고 있고,
동전 몇개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소비욕을 어쩌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소용 없어지려면 한 가지 요건이면 된다.
'울트라 킹'으로 아프면 된다. 다 소용없다.
그렇게 왕창 아플 때 떠오르는 건 꽃도, 미술용품도, 돈도 아니다.
불사조도 아니다.
다시 떠오른 것은 방송 시청에 찌들어 광고까지 섭렵하다가 만난 그 존재.
그냥 마냥 열렬히 건강하고, 가끔 방전이 되더라도 충전하면 되고마는,
아주 효율적이고 깔끔한 신체 체계를 가진, 백만돌이, 에너자이저.
그와 같이 운동하며 데이트를 하면 건강해서 어깨결림 같은 건 모르고 살수 있지 않을까?
저기 에너자이저가 온다. 다짜고짜 나에게 말을 거네.
'내 여자친구가 되지 않을래? 그러면 너도 백만순이가 될 수 있어.
자, 나를 봐~. (내 귓가에 입을 대고 바람 넣어가며 말한다.)
배액만 스으우무으을 하아~나아~효오햐아~~~'
어머, 내가 생각한 백만돌이는 요렇게 변태적이지 않은데?
너 에너자이저 맞어?
'나? 맞어. 나 에너자이저, 백만석이.'
꺼져!
에너자이저도 각양각색, 에 바이 에.
4
괜찮았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는 건 후유증 때문? 아니면 엉뚱한 상상 때문?
불사조를 떠올리는 것이 순수하거나 에너자이저를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거나,
뭐 딱히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저 불사조보단 벽만 돌이가 더 인간적이고 성격이 좋아 보여서 그렇다.
모양새도 눈, 팔, 다리가 인간과 비슷하니까.
음... 그래도 '나는 불사조다.'라고 읊조리는 게 폼은 더 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에너자이저이다.'라고 말하려 해도... 그게 썩 내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나는 건전지다.'라고 말하는 게 뭐 그리 즐겁겠나.
5
아프면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되어 있다.
간밤 병이 어찌나 힘들던지 이불을 덮지 않았는데도 식은땀을 흘렸다.
(이해가 안 가는 게, 어깨 통증이 왜 식은땀을?)
아무튼 살아나서 이제는 '쌩쌩'한 편이다, 충전된 건전지 처럼.
건강은 늘 중요하고 소중한 것, 아끼고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