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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Feb 25. 2023

자잘스토리 7 - 065 - 파편






1


우리 집 간식은 져니가 만드는 판나코타이다.

몇 가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우유 혼합 액체를 컵에 넣고

냉장해서 굳힌다. 이때 냉장고의 냄새와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래핑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하겠다.




2


근데 져니집 랩이 사용하기 불편하다.

래핑 절단날이 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랩을 잡아당겨 날에 대고 잘라봤자,

랩이 이리저리 구겨지고 접혀져서 영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게 되게 짜증스럽다. 만들 때마다 래핑을 해야 했다면,

져니는 진작에 판나코타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터이다.




3


그런데 어머니가 컵을 받쳐 예쁘게 사용하라고 내어주신

유리 컵 받침이 유용했다.

져니도 예쁘게 컵 받침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이게 사이즈가 컵의 입구를 딱 밀착하여 밀봉하기가 좋았다.

앗싸, 이건 래핑보다 낫다.

편리했고, 매번 사용할 때마다 편리할 것이 분명했다.

사뿐히 컵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4


한편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께 화내셨다.

어머니께 들은 바로는,

아버지가 어머니께, "재활용 관리를 잘 못하느냐?"시며

아버지가 발에 날카로운 뭔가에 찔려 피가 나서 화가 나셨단다.

뭘 어쨌길래 피?




5


부모님의 다툼이지만 가끔 져니는 그분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져니가 조금이라도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보곤 한다. 

뭐 거의 그랬던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피가 나셨다니까,

요즘 유리잔을 많이 쓰는 져니는 괜스레 신경 쓰였다.

져니가 혹시 뭘 깨 먹었나?

하지만 그날까지도 유리잔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판나코타를 만들 때, 뭐가 까끌까끌 따가워서 살펴보니,

유리컵 받침의 밑바닥 귀퉁이가 부서져있었다.

깨져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니,

전날의 부모님 다툼의 시초를 져니가 제공했음을 알았다.

작은 유리 파편이 아버지 발에 파고들어가 상처와 피를 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 부주의를 탓하셨는데,

어머니는 당연히 억울하셔서 화를 내셨고 다툼으로 발전...

이거, 져니는 죄송하고 난처하게 되었다.




6


모른척 할 수는 없어서,

아버지, 어머니를 각각 따로 뵙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져니의 고백을 듣고 애먼 사람에게 화낸 것을 자각, 숙연해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 혼자 산에서 다치고 집에 와서 성내신다고 생각하셨는데,

나름 아버지가 정말 집에서 다치신 걸 아시고는 그냥 이해하시고 마셨다.

뭘 깨먹고 그러냐고 꾸지람 들을 각오를 했건만, 어라, 싱겁게 끝나고 말았네?

어쩌겠는가, 져니는....




7


이탈리안식 우유 푸딩, 판나코타를 '끝장나게 맛있게' 만들어서

다음날 부모님께 상납, 접대하여(판나코타 한 컵씩만으로) 

침묵하시는 부모님께 조용히 죄의 사함을 받았다.




8


두 분의 사이는?

왜 다툼 뒤에 좀 더 친밀해지지 않던가.

좋아지셨다.

이쯤 되면 잘 깨먹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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