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Mar 04. 2023

자잘스토리 7 - 066 - 스치운다






1


노오븐 크림치즈 케이크를 만들려고 한다.

나의 요리 스승은 유튜버님들,

그들의 레시피와 방법을 영상으로 익히고 깨치는 편이다.


예전에 판나코타를 만들 때도 그러했지만,

한 가지 요리를 익히려면 그 주제의 영상을 두루 찾아보는 것이 좋다.

그중 살펴보다 보면 어느 영상 속의 방법이 쉽다거나, 

필요한 재료를 자신이 똑같이 갖추고 있다던가,

아니면 유난히 맛있게 보이는 비율로 재료를 섞는다던가... .

영상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게 다르다, 완성 요리의 뉘앙스가 다르기도 하고,

요리 양의 규모가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다.

그러한 점과 몇몇 이유로, 나는 일단 자신에게 적합할 것 같은

방법과 재료를 구비한 영상을 발견할 때까지

되도록 많이 찾아 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2


노오븐 크림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영상 중 하나를

처음 클릭해 들어가 시청했을 때,

그 첫 영상의 방법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나는 신이 났다.

다른 관련 영상은 볼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 영상이 쉬워 보였던 건 준비물부터 접근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케이크의 틀 대신 1L의 종이 우유갑을 이용한 것이었다.

얼마나 좋은가? 틀을 살 필요 없이 우유갑이면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3


유당불내증 때문에 우유를 가려서 마셔야 했는데, 

동네 마트에선 락토프리 1L  우유를 팔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반 우유를 사서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차선으로 인터넷에서

종이갑(우유갑 같은 종이갑)에 담겨 파는 쿨피스 주스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쿨피스는 3개를 한 묶음으로 판매 중이었고, 나는 거의 그 상품을 구입할 작심을 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구입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품절이 되어 있었다.


아.. 참.. 우유갑이 딱인데...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베이킹 틀을 사기로 했다.

검색 끝에 18cm 크기의 케이크 원형 틀을 선택할 수 있었다.




4


문제가 생겼다.

생각해 보니 우유팩의 면적과 원형 틀의 면적이 같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재료마다의 적정량과 각 재료의 비율도 조금씩 다를 테고....


머리가 띵 했다.

일단 원형 틀은 결제했으니, 어쩔 수 없다, 찾아내야 했다.

나는 열심히 유튜브에서 영상을 검색해나가며 시청,

다시 다른 영상들을 시청, 그걸 반복했고,

드디어 내가 구입한 것과 같은 틀로 노오븐 크림치즈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어느 유튜버의 요리 영상에서, 재료들의 적정량과 틀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찾을 수 있었다.




5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찾아낸 그 영상이 너무 요리를 너무 고퀄로 만들고 있었다.

레몬즙과 바닐라 엑스트랙을 넣으라 했다.

엑스트랙은 나도 가지고 있는 재료니 그것만 넣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레몬즙은 필수고 바닐라 엑스트랙은 선택이란다.

레몬즙?

검색하며 속으로 외쳤다.


레몬즙? 얼마면 되니? 얼마면 되겠어? 그거? 돈으로 사겠어!


그런데 어라?

삼천 몇백원이네?

이런 정도면 투자할 수 있지.

날름 장바구니에 넣었다.




6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설탕이 문제였다.

영상에서 통밀과자 가루에 설탕을 넣어 섞었다.

그런데 뒤에 크림에는 슈거파우더를 넣어 섞었다.


뭐지? 슈거파우더는 데코 할 때나 쓰는 게 아니었나?


이상해서 검색해 보니.. 참.

크림에 설탕을 섞으면 잘 안 녹아서

완성 후 먹을 때 설탕 알갱이가 씹힐 수 있단다.

그걸 방지하고자 잘 녹을 수 있게,

입자가 고운 슈거파우더를 사용하는 것이란다.

자꾸 없는 재료가 등장하니 심사가 좋지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속으로 외쳤다.


슈거파우더? 얼마야? 돈으로 사겠어!


검색해 보니, 가격이 애매~~~


5천 원 이하면 싼 느낌이고, 1만 원 이상이면 비싼 느낌일 것 같다.

그런데 애매하게 7,090원.

적당한 것 같지는 않은뎅, 흠.

에라이! 호기롭게 사고 만다! 결제 버튼 꾹.




7


바람이 분다.

통장에 구멍이 뚫려서 돈이 새고

그 구멍에서 생긴 기류가... 즉,

바람이... 날 스치운다.

오늘 밤에도 지름신이 바람에 날 스치운다.

난... 안 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7 - 065 - 파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