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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r 18. 2023

자잘스토리 7 - 068 - 요리는 묘한 것






1


어제 어머니가 김밥 6줄을 만드셨다.

만드시다가 일부 재료가 간당간당하게 남아있더니

결국 마지막 두 줄에는 속 재료가 한 가지씩, 두 가지씩 부족하게 되었다.

져니는 그 두 줄의 김밥 행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5가지 속 재료가 든 알찬 김밥과 3,4가지 속 재료의 덜 찬 김밥 중,

당연히 다 들어있는 알찬 김밥이 맛있을 것이 분명했다.

결정은 어머니의 손끝에 달려있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고,

져니는 식탁 정리를 다 하고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 만든 김밥을 썰어서 그릇에 나눠 담았다.

어머니와 져니 몫의 접시에는 각각 김밥 1줄 반 분량을, 아버지 접시에는 3줄을.




2


총 6줄 중 알찬 김밥은 3줄이었다.

나머지 2줄은 덜 찬 김밥이었고,

나중에 알았는데, 남은 한 줄은 단무지가 떨어져서 신 김치를 넣은 김밥이더라.




3


알찬 김밥 1줄과 덜 찬 김밥 2줄이 아버지 접시로 갔다.

알찬 김밥 1줄 반은 져니의 접시로 왔고,

어머니 접시엔 신 김치 김밥 1줄과 알찬 김밥 반줄이 올려졌다.




4


요리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다.

그냥 사람 수대로 똑같은 양을 나눠주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못하다.

일단 양에서도 그렇지만 형식에서도 묘하다.

모임을 열게 되어 다섯 명이 모인다면, 통일감 있게 똑같은 그릇에 담아주고만 싶다.

만약 똑같은 그릇 4개와 비슷한 한 개의 그릇밖에 없다면,

이 다른 한 개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갈등이 시작된다.

그 한 개의 그릇이 못생긴 것이면 자신의 몫을 담아 쓰면 되는데,

예쁘면 문제가 달라진다.

제일 어른을 줄 것이냐, 그 취향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줄 것이냐,

생전 예쁜 거 못써봤을 것 같은 남자에게 양보하느냐,

마침 생일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대접해 줘야 할 것 같으며,

유난히 우울해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배려를 해줘야 할 것도 같다.




5


요리는 재료 구입에서 조리 그리고 식기 선택과 모임의 분위기 등등

여러 가지를 많이 신경 써야 하는 분야인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져니에게, 알찬 김밥과 나머지 김밥을 배분하기까지

어떤 생각과 신경을 쓰셨을까?




6


아버지가 어른이시니 알찬 김밥을 드려야 하겠으나, 

딸내미도 이쁘니 알찬 김밥을 주고 싶으셨겠지.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각각 알찬 김밥을 한 줄씩 담아주고,

양이 큰 아버지에게는 덜 찬 김밥 2줄을 더 얹으시고,

희생정신 투철하신 어머니는 신 김치 김밥을 당신 몫으로 챙기시고,

남은 1줄의 알찬 김밥 반 정도는 당신도 맛보시고 싶으셔서 담으시고,

마지막 남은 반을 양 맞춰 져니에게 주신 것이겠지.




7


그냥 담다가 보니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요리를 하게' 되면 식기 하나 배분하는데도 온통 신경이 쓰이게 되고,

거기에 '요리하는 어머니가 되면',

김밥 나눠 담는 그 간단한 일이 절대 간단하지 않다.

요리를 나눠 담으면서 마음과 배려와 사랑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8


져니는 알찬 김밥 1줄 반을 먹었다.

우리 집엔 '손맛 좋은 요리사'이자, '사랑 많은 전략가'가 거주하신다.

그분이 우리 어머니이시다.

져니는 어머니를 닮아 요리사는 될 수 있겠는데, 음... 전략가는...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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