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by 배져니
20161123-물고기 사본.jpg




1


경로당에서 전에 못 뵀던 새로운 어르신을 뵈었다.


진료하시는 선생님과 경로당 도우미 어르신과 그 새로 뵌 어르신은 성이 모두 "백"가라는 공통점을 가지셔서 한동안 그 사실로 '썰'을 풀었다.

'백'가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다며 어찌나 반가워하고 즐거워하시던지 보기 좋았다.


슬며시 '저는 '백'가에서 '기역 자 하나 빠진 '배'가인데 그러면 사촌쯤 되지 않을까요~?'라고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끼어들려다 말았다.

사람이 너무 유치한 농담을 하면 저렴해 보이니까 말이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농담 유전자가 이제나저제나 튀어나오려고 하는데 워낙 길도 들지 않고 단련도 되지 않은 터라 자꾸 유치한 농담으로 빠져서 스스로도 난감하다.


어차피 드러내지 못할 유치함이라면, '그래 나 혼자 농담 치자.!', 생각하고

'기역 자 하나 빠진 배가라 백 가와 사촌쯤 된다, 라니! '하고는 혼자 속으로 '꺄하하! 완전 웃겨!! 꺄핫핫!'하고 방정스레 웃는다. 어디까지나 속으로.


그러나 겉으로는 명랑하되 점잖게, "백진희, 백지연, 백윤식, 백종원.. 와아~ 백 가에는 예쁘고 핫한 사람들이 많잖아요~여사님들도 그래서 예쁜가 봐요~"라고 그분들의 흥을 돋워드리는 것으로 그쳤다.


하여튼 그 새로 뵌 백씨 어르신은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고 하셨다. 정신도 깜박깜박하고.... 나는 뜸 붙이는 파트라, 진료 파트에서 체크 받으시는 그분의 상태를 잘 듣지는 못했지만 여튼 눈빛도 맑지 못하신 게 건강 곤란을 겪고 계신 듯했다.


그렇게 그날 그분을 뵙고, 그다음 주에 다시 갔을 때는 못 뵀다. 그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분명 "앞으로는 꾸준히 경로당에 나와야겠어."라고 하셨는데 왜 안 보이실까,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주, 도우미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그 백가 어르신 기억나요?

그 어른이 전화도 안 받고 영 안 보여서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에도 기척이 없어.

그래서 주인집에 연락해서 문을 따고 들어갔지.

그랬더니.... 쓰러진 채로 돌아가셨더라고....

머리가 맨날 핑 돈다고 하더니 어지러워서 쓰러지다 머리를 부딪쳤나 봐.

내가 가서 발견한 거라. 안 갔음 계속 그렇게 있었겠지... 쯧쯧....

가족도 없고, 데려다 키운 아들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장례 치른다고 하네요."


기분이 참 이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에 뵀을 때 그분은 새까만 검은 머리에 검은 재킷, 검은 바지를 입고 계셨다. 그냥 옷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재킷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상표에 성냥개비 머리만한 흰색이 붙어있었을 뿐,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다른 어르신들은 온화하고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들 계신데 그분은 좀 젊은 축에 속하셔서 젊게 입고 계신가 보다 생각했다. 젊은이들의 락의 상징이나 블랙 색상의 패션 등을 표방하시나?, 뭐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죽음의 예견 표시였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기 때문에 그분의 전후 패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억측이긴 한데...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다.


죽음은 너무나도 가까운 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가까운 친척 어르신의 부고, 지나가듯 뵌 분의 죽음 소식.


그런 것들이 너무 낯설구나... .











2


화요일 저녁, 집 밖을 나갈 때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이제는 진짜 겨울!

화요일과 수요일에 바깥바람을 좀 많이 쐬었다.

단단하게 옷과 머플러로 무장하고 나갔는데도 추웠다. 최대한 이동을 빨리해서 재빨리 따뜻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그 몇 십 분의 이동시간에 맞은 찬바람이 감기를 모시고 행차했다.


콧물이 훌쩍, 머리가 지끈.

기분 저조, 컨디션 난조.

사고력 저하, 행동력 추락.


일단 집에 남아있던 약을 먹긴 했는데 더 심하게 안 번졌으면 좋겠다.


판피린 소녀처럼 외친다.


감기 조심하세요~~~







-------------------------------------------------------------------



인간이 현명해지는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경험에 대처하는 능력 때문이다.


- 데카르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솔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