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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Apr 22. 2023

자잘스토리 7 - 073 - 보여줄 수도 없고







1


사촌 언니가


"이모, 져니랑 여기서 차 마시며 쉬면 좋잖아요.

져니야, 차광막 있으면 좋겠지?

너도 방안에만 있지 말고 여기 나와서

잠깐씩 쉬면 좋잖아, 안 그래?"


...라고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무려 3년 전부터 사촌 언니가

옥상 차광막을 해주겠다고 하셨었다.

물론 어머니는 2년 동안 계속 마다하셨다.

그게 몇만 원짜리도 아니고, 게다가 조카에게 해준 게 없는데

일방적으로 받는다는 건 부담이라는 게 어머니의 요점이셨다.




2


어머니가 하도 마다하시니까 사촌 언니가 나에게 연락하셔서

'설치할 만한 차광막을 물색해 보고 알려달라'라고 하실 정도였다.

작년 가을, 늦가을도 다 지나가고 날이 추워지자 언니는,


"날이 따뜻해지면 설치하는 게 낫겠지? 내년 봄에 설치하자.

그동안 알아봐봐."


...라고 하셨다.

언니는 알아보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안된다고 알아볼 필요 없다 하시고,

내가 정말 중간에서 '알아봐야 돼? 말아야 돼?' 갈등했다니깐.




3


지친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무니, 언니가 몇 년에 걸쳐 저렇게 해준다고 하시는 건,

정말 해주고 싶어서인 거 같아요.

물론 부담은 되지만, 너무 거절하시는 건,

예의가 아닐지도 몰라요."




4


결국 어머니는 언니의 호의를 받아들이셨고

그 후에는 설치 계획의 진전이 보였다.

사촌 언니는 옥상에 카페처럼 차양 어닝을 설치해 주고 싶어 하셨으나,

우리 어머니는 실용적으로 옥상 문에 빗물이 들이치지 않으며,

비바람에도 튼튼하게 견딜 고정식 차광막을 주장하셨다.

심정적으로 언니 의견을 따르고 싶었지만,

옥상 주인 어머니의 의견에 동조해 드렸다.

결국 어머니가 원하시는 차광막이 선택되었다.


오늘 전문 기술자분들이 오셔서 차광막을 설치하셨다.

나는 나중에야 옥상에 올라가 결과물을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푸른색 반투명 하늘 가리개라서 막힌 느낌이 없어서 괜찮더라.


차광막 한쪽 방향에 갈대발이 늘어져 있기에 뭔가 싶었는데,

설치 후에도 들어오는 볕의 경로에 언니가 발을 걸어주고 가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을 정리하면, 언니가 갈대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냈고,

어머니가 마침 창고 어딘가에 발을 넣어둔 것을 기억, 찾아내서 꺼내어 오시자,

언니가 보기 좋게 걸어주고 간 모양이었다.

그 세심함이 더 감사했다.


언니가 진정 어머니의 옥상을 꾸며주고 싶으셨구나.

이모 생전엔 이모가 그렇게 우리 어머니를 챙기시더니,

이젠 언니가 우리 어머니를 챙겨주시는구나...


가슴이 먹먹한 게 감동 먹은 거 같다.




5


언니 나이를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건 분명하다.


사촌 언니니까 어릴 때부터 봐왔으나,

내가 붙임성있게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고,

게다가 난 소심해서 사람은 다 멀게 느껴지는데,

나이 차이까지 제법 있는 관계라서....


체감상... 과장 조금 보태서 언니는,

'문중 어른'같다.

어렵다는 뜻이다.




6


감사하고 감동도 먹었는데,

당최 어려워서 어떻게 감사함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네.

진짜 감사한데...

정말 감사한데...

보여줄 수도 없고...

웃통 깔까?




7


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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