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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y 06. 2023

자잘스토리 7 - 075 - 열 한 글자







1


아버지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다.




2


어머니가 그러셨다.


"네 아빠가 어느 순간 밥 량이 확 줄었어."


그래서 눈여겨보니 정말 1/3가량 밥 량이 줄으셨다.

이때가 10여 년 전이었다.

밥 량은 줄으셨지만 식욕은 여전히 좋으셨으니 뭐 대수랴 싶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반찬을 가리지 않으셨고 한 그릇의 식사를 너끈히 해치우셨다.




3


얼마 전까지도 그러신 줄 알았다.

새벽에 아버지가 등산을 가셨는데 어머니가 그러신다.


"네 아빠가 아침을 안 먹고 갔나 보다."


그때 좀 신경이 쓰였다.

챙겨드리지 못했던 죄송함보다


'아침을 안 챙겨드셨다고?'


...라는 의아함이 먼저 떠올랐다.




4


그날 등산에서 돌아오신 걸 봤고 져니는 방에서 하던 일을 하는 중이었다.

방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들이미시며 말씀하셨다.


"나, 감기 걸린 것 같다. 병원 가서 약 좀 타올게."


이때 정말 좀 걱정이 되었다.

식욕 좋으신 아버지가 아침을 안 드시고 등산길에 오르셨다는 사실도 놀라웠었지만,

한 끼 안 드시고 등산을 하셨다고 바로 몸살감기에 걸려버리시는, 아버지의 체력 저하가 여실히 느껴졌달까.




5


자꾸만 부모님이 쇠잔해지시는 게 마음 짠하고 가슴이 저리다.


어머니는 약하신데 정신력으로 사시는 분이라 강한 척하신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체력은 눈에 띄게 드러나니 져니는 그냥 한숨 쉴 뿐이다.


아버지는 강철 체력이시라 '약 따위'는 안 드시는 분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약 타러 병원에 가신다?

져니... 걱정해야 할 타이밍인 게 맞는 거 같은데... .




6


아버지 친구분들이 한 분 두 분씩 세상을 떠나시고, 부모님의 형제자매분들이 한 분 두 분씩 세상사를 마무리하셨다.

지인들이 내 연배이고, 지인들의 부모님이 내 부모님의 연배이신데,

그들의 부모님 임종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져니... 점점 기분이 어두워진다.




7


져니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아버지의 새벽 진지를 챙겨드릴 부지런함도 없고,

어머니가 매일 하시는 텃밭 관리를 해드릴 자신도 없다.

부모님은 연로해가시는데, 거기에 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져니가 '썩을 X'같기만 하다.


그래도 져니 생각은 같다.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고, 부모님이 하시던 걸 안 하셔도 안 하던 행동이시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고 진심이다.




8


져니는 그저 부모님의 일상을 살짝 거들거나, 조금씩 져니 일상을 그분들께 맛 보여 드리는 것으로 생활 형태를 유지하려 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뭔가 획기적이고 큼지막한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져니도 연로하여 그런 것을 할 여력이 없다.


그저 몸에 좋을만한 간식을 만들어 드린다거나,

아버지가 등산길에 촬영해오신 사진을 봐드리며 주제와 구도에 대해 칭찬 말씀을 드린다거나,

어머니가 만드신 색다른 요리에 끝내줘요,라고 환호한다거나,

괄사로 얼굴과 두상의 마사지를 해드린다거나,

연로한 나이에도 '자식은 다 이쁘기 마련이야.'라는 믿음 하나로 부모님께 애교를 부리는데, 

이게 멋쩍지만 전혀 멋쩍지 않아 하는 게 포인트이므로 "아부지~!"또는 "어무니~"라고 크게 외치며 다가간다.

크게 외치는 게 핵심 포인트인데, 크게 외침으로써 용기를 불러내는 효과가 있듯이, 져니의 경우엔, 용기의 효과? 노우 노우, 도저히 애교 부릴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잊게 하는 망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가 가서는 아부지 어깨에 져니 어깨를 부비부비, 어무니의 경우엔 급포옹을 하고 망각의 효과가 크면 뽀뽀까지 한다.

그러고 나면 부모님은 말씀이나 행동으로는 별 내색은 안 하시는데, 안색으로는 내색하신다.

미세한 기색인데... 미세한데... 완전, 정말 좋아하시는 기색이시다.

그래서 져니는 다음에도 다시 한 번 외친다. "아부지~!", "어무니~!"




9


져니가 할 수 있는 것이 간식과 애교 정도라는 게 안타깝지만,

글쎄, 우리 부모님은 져니에게 바라시는 게 별로 없으신지, 별 볼일 없는 져니를, 정말 있는 그대로 예뻐하신다.

져니는 '애교 정도만으로도 효를 다할 수 있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냥 너~어무 예뻐하신다.

이러니 사랑받는 입장에서 져니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


열심히 웹을 뒤지고 있다.

맛 좋고, 건강에 좋고, 해드릴 수 있는 새로운 간식을 물색 중이다.


간혹 새로운 애교를 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한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호부호모의 애교는 부모님의 사랑이 다할 때까지 효과가 지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더 강렬한 애교를 부리면 좋지 않겠느냐고?

그럼..... 좀 더... 크게 불러 드리면 되지 않을까?

고민 좀 해봐야겠네...

스타카토로 끊어 부를까? 노래로 부를까? 랩으로?

몰라, 하던 대로 할 거다. 효과는 그래도 지속될 걸.




11


아부지, 어무니, 건강하세요.

'아부지, 어무니, 건강하세요.',라는 열 한 글자의 철자 사이 틈틈이, 

절절한 저의 사랑을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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