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May 13. 2023

자잘스토리 7 - 076 - 어머니를 위한 라테는?







1


져니가 사용하는 커피 도구는 세 종류이다.

핸드 드립퍼, 베트남 핀 , 모카 포트.


이 세 가지 도구로 주로 만들어 마시는 커피의 메뉴는 다섯 가지이다.

아메리카노, 쓰어다, 카페 라테, 흑당펄 라테, 버터크림 라테.




2


이 중, 흑당펄 라테와 버터크림 라테는 어머니를 위한 져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가 커피를 좋아하시니 기왕 드시는 거 달달한 시럽도 들어가고, 우유도 들어가는 커피를 마시시면,

어무니의 체중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선별해서 선택한 메뉴이다.




3


한 2~3년 동안 여름이면 흑당펄 라테를 맛있게 드셨기에, 져니는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

더 크리미하고 열량 가득한, 맛 좋은 라테를 선별해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버터크림 라테이다.

져니와 아버지는 꽤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 어무니는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만들어드려도 한 모금 홀짝 드시더니 마다하시고 영 드시질 않는다.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드려봤는데 역시나 마다하신다.

져니는 그저 속으로 '아직 한여름이 아니어서 찬 음료가 싫으신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날이 더워지고, 몸이 지치고 힘드실 때 드리면, 그때에는 맛있게 드시겠지.'라고도 생각했다.




4


그러나 져니는 잠시 어머니가 버터크림 라테를 거절하실 때의 상황을 복기해 봤다.


"나는 버터 들어간 건 별로더라...."


"나는 안 마실란다. 전에 것이 낫다."


"버터는 그저 그래..."


저 말씀 중, '전에 것'이라는 게 연유를 덜 넣어서 덜 단, 이 직전에 만든 버터크림 라테를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흑당펄 라테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내심 흑당펄 라테가 더 마음에 드시는데,

예의상이라도 버터크림 라테가 맛있다고 말했다가는,

딸내미가 흑당 라테의 재료인 타피오카 펄이라던가, 

흑당 시럽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하신 걸까?

그래서 예의상이라도 맛있다고 안 하신 걸까?


아닌 게 아니라, 그러려고 했다.

집에서 온갖 재료를 구비해서 이것저것 다 해먹으면 좋기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식구이다.

재료를 다 소진하지 못할 것이고, 버리게 되는 재료는 낭비가 될 것이다.

져니는 흑당펄 라테는 마셔볼 만큼 마셔봤고, 이제 다른 라테를 맛 들여보는 것도 좋은 변화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어머니만 흡족해하신다면 흑당펄 라테는 뒤안길로 보내고 새로운 버터크림 라테를 맞이하고자 했다.


그러나....

상황을 복기해 보고 '전에 것이 낫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짚어내보니 안될 일이었다.

당장에 타피오카 펄과 흑당 시럽을 주문했다.




5


폰으로 유튜브 삼매경 중이신 어머니 곁으로 가서 슬쩍 말했다.


"타피오카 펄이 오늘 도착 할텐데..., 오면 한 잔 만들어 드려요?"


유튜브 보실 때에는 내가 곁에 가서 말 붙여도 알은체도 안 하시던 어머니이신데,

이번엔 고개를 드시고 져니를 바라보신다.

져니는 고개를 드시는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임을 봤다.

약간의 기대감과 즐거움이 어린... 한마디로 좋아하시는 눈빛이었다.




6


헛발질만 하다가 마침내 공이 발에 채여서 앞으로 뻥 나가면 기분이 너무 통쾌하다.

져니는 헛발질을 많이 했지만 어머니의 눈빛을 확인하고, 져니가 손흥민 100호 골과 다를 바 없는, 통렬한 슛을 날렸음을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고 나니 그간의 헛발질이 더 부끄럽군.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일은, 강요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져니로서는 어무니 체중 증가를 위해 열량 높은 버터크림 라테가 적격이라고 생각,


'맛도 좋겠다, 시원도 하겠다, 문제 될 게 없는데 왜 안 드시느냐?'


...라고 따져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각기 취향이 있으니, 싫은 건 싫은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져니는 버터가 고소하지만 어머니는 기름져서 싫으신 거였다.

잠시 그 사실을 망각하고 드시라고 강요할 뻔 했다.




7


올 여름 다시금 흑당펄 라테를 만들어야겠다.

시원하고 달달한 흑당펄 라테를, 어머니는 거부감 없이 좋아하시며 드시겠지.

그러나 말이다.

져니는 목표를 달성하고야 마는 사람, 어머니를 살찌우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져니의 버터크림 라테는 어머니께 거부당했지만 흑당펄 라테는 받아들여진 상황이다.

흑당펄 라테에 시럽을 정량보다 추가로 5ml를 더 넣어서 드려야지, 어머니께.

져니,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

달다고 하시면 우유를 10ml 더 넣어드려야지.

져니는 이렇게 계획이 다 있는 사람이야!

양이 많아져서 한 번에 다 못 먹겠다고 하시면, 점심부터 저녁까지 나눠 마시시라고 해야지.

음... 이건... 좀... 아닌가?




8


아무튼 마음만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사....




9


어머니를 위한 라테는?

모른다.


'져니 어머니를 위한 라테는?'

안다.

흑당펄 라테.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7 - 075 - 열 한 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