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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n 17. 2023

자잘스토리 7 - 081 - 공략 대상







1


어머니는 입이 짧으셔서 당최 뭘 안 드신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입이 짧으시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시거나 대식가도 아니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색다르고 맛있는 건 챙겨 먹어도

음식물이 썩 내키지 않으면 별로 먹지 않는다.




2


식성이 이렇다 보니, 집에 주전부리가 2개 이상이면

몇 날 며칠이고 소진이 안된다. 남아서 상하기 직전이어야

부랴부랴 합심해서 먹어버리는 형국이랄까.




3


그릭 요거트를 간식으로 마련해 놓았는데,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럴 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고민이 생기는데,

나는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내가 먹는 것이다.

그러나 양이 상당하여 나 혼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모임 약속이 있으셔서 이래저래 뭘 드시고 들어오시니 

아버지는 거의 늘 배가 채워져 있으시고

그래서 공략 대상은 어머니이었다.




4


그러나 어머니는 정말 뭘 안 드신다.

의식이 있으실 때 뭘 드리면 안 드신다.

주관이 강하셔서 배가 안 고프다고 거절하시기 일쑤이다.

의식이 희미하실 때, 양이 조금이라는 걸 강조해서 드리면, 얼렁뚱땅 드시기도 한다.




5


나는 어머니가 저녁 나절, 드라마 시청하실 때를 공략했다.


"어무니, 그릭 요거트 드실래요? 아주 쬐끔만?"


대답은 듣지 않고 냉장고를 열고 그릭 요거트 통을 꺼낸다.

입으로는 계속 말한다.


"몸에 얼마나 좋게요. 배부르면 더부룩하시니까 쬐끔, 아주 쬐금,

정말 쬐끔만 드세요."


그러면서 통에서 그릭 요거트를 떠내어 그릇에 담는다.


"봐봐요, 이만큼. 얼마 안되죠?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아구, 쪼끔이어라.

이쯤은 한 숟가락에 다 드시겠다, 그죠?"


어머니는 드라마 보시느라, 내 세뇌의 읊조림 들으시느라 정신이 혼미하시다.

정신 돌아오시기 전에 얼른 꿀을 찾아 요거트에 뿌린다.


식탁으로 오시라 하면 안된다, 정신이 돌아오신다.

내가 스푼으로 꿀과 요거트를 개어가면서 소파에 계신 어머니께 다가간다.


"아구, 너무 쬐끔이다, 좀 더 담을 걸 그랬나? 아니다, 이게 부담 없죠?

금세 드시겠네요. 진짜 얼마 안되니까, 그죠? 섞어서 드세요."


...라고 하며 그릇과 스푼을 건네드리면, 

저어지던 스푼의 관성으로 어머니도 스푼을 들고 계속 저으시다가 한술 떠 드신다.

일단 그렇게 입에 대시면 게임 끝이다.




6


이렇게 다 드시면 드신 그릇 설거지는 웬만하면 내가 했다.

간식 드시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그런 귀찮은 기억을 남겨드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간식을 드시고 산뜻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면 된다는,

아주 편하고 만족스러운 기억을 남겨 드려야 했다, 다음날을 위해서.

뒷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 욕실 문을 열고 씻고 계시는 어머니께

긍정적 기분 유도의 말을 좀 더 읊었다.


"어무니, 배가 든든하죠?

배고프면 잠도 안 오는데, 쬐끔 드셔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단백질 덩어리라 든든하죠? 참 맛있는데 든든하다니깐요."




7


다음날 어머니는 그릭 요거트를 마다하셨다.

세뇌고 좋은 기억이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이거, 이거, 라이터를 준비해야 하나?

레드 썬!이라고 속삭여야 할까?

실에 추를 달아 진자 운동시켜 어머니 눈 앞에 가져가 볼까?

아, 속상해.

왜 안 드신다는 건데요~~~!




8


일단, 이래저래 그릭 요거트는 내일이면 다 소진될 것 같다.

뭔가, 성공은 한 것 같은데, 왜 후련하지가 않지?

아, 찜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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