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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16. 2023

자잘스토리 7 - 094 - 섭섭함의 토로     








1


그간 내가 배움처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취침하신 후였다.

밤 늦은 시간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공부하느라 수고했다는 듯이

계란 후라이와 고추 초절임을 내어 밥상을 차려주셨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와 밤에 잠시 잠깐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배움처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는 집에서 생겼던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야기가 있으셨는데,

재미난 건 그러시면서도 아버지가 폰에 앱을 깔아야 하는데 할 수가 없으니

다음날 일어나면 '아버지 앱 문제를 해결 좀 하라'라고 

요청을 해놓으시는 어머니이셨다.

역시 어머니는 가족들의 대소사를 살피시는 데 바쁘시다. 다정한 분.




2


정말, 저질 체력이니 힘이 없느니... 그런 말들 구차해서 안 하려고 하는데,

내가 진짜 저질 체력이다.

배움처 갔다 오면 정말 하얗게 타버린 것처럼 소진된다. 힘이 하나도 없다.

밥 조금 먹고 인터넷 서핑 조금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잠든다.

일어나면....


'어라? 바로 나갈 준비를 시작해야 수강시간에 늦지 않겠네?'


...하는 상황이다.

계속 이러지는 않겠지만 생활 체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얼마간 쭉 이러지 싶다.

아무튼 그 때문에 아버지 폰의 앱 등록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강좌가 없는 토요일이 되어서야 살펴봐 드릴 수 있었다.




3


아버지가 등록을 얼른해서 앱을 실행해 보고 싶어 하시더란 말을 

전해 들었었던 터라, 정말 죄송했다.

농담 아니고, 토요일날 일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눈곱 떼기도 아니고, 물 마시기도 아니고 아버지 폰의 앱 등록해 드리기 였다.

나로서는 그렇게 하고 나니 일단 마음이 쬐끔 편했다.




4


아버지는 오랜만에 대면하는 딸을 두고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도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신다.

반세기를 함께 하시고도 서로에게 섭섭해하는 일이 생기시니,

그걸 두 분 모두 딸에게 호소하시니,

나는 당황스럽다.

근데, 이럴 땐 편을 들 필요가 없다.

경청해 드리기만 해도 위안이 되실 터이다.




5


오늘 아침 아버지는 전에 어머니가 말실수하신 사례를

끄집어내어 어머니를 놀리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내게 섭섭한 게 있으셔도 여전히 반찬을 만드셨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섭섭한 게 있으셔도 여전히 어머니께 장난을 거셨다.

나는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자리마다 놓아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며, 속으로


'두 분, 그렇게 서로 다정하실 거면서 섭섭하시다는 토로는 왜 하셨어요?

지금 딸, 놀려요? 섭섭해욧!'


...라고 꿍얼거리며, 역시 편들기보다 경청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6


부모님은 아직도 당신들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신 듯.

근데, 사실 나도 부모님의 성향과 특성을 매일 갱신하며 알아가는 기분이다.




7


인간 자체가 소우주라고 하더라.

인간 내면이 드넓고 무한해서 탐험하고 관찰해도

끝이 없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아부지도 하나의 소우주를 품고 있고

어무니도 색다른 소우주를 품고 있고

두 개의 소우주 곁에 나라는 소우주가 자리하고 있다.

모두 서로를 부딪치고, 반응하는 상황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상황과 추이를 지켜보며 이해하고 행동하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아무튼 소우주인 나는 내일부터 다시 배움처를 가야 해서 

일찌감치 쉬어야 겠다.

빅뱅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나를 깨우지 말라.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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