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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23. 2023

자잘스토리 7 - 095 - 글자 배열 마음대로








1


저번 주중 어느 날 조금 일찍 배움처에 갔다.

이전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강의실로 올라갔다.

마침 우리 과 수업도 가르치는 선생님이 강의실 점검을 하고 계셨다.

달랑 나 한 명이 들어갔기에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나니 선생님이 문득 그러신다.


"전에 애견 미용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전에 애견 미용실 하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이게 웬 생뚱맞은 오해인가?


"제가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놓고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은 하실 말씀이 없으셔서 침묵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은 팽팽 돌아갔다.




2


'애견 미용실 하는 사람이라... 물론 여자겠지?'


나는 갑자기 풋 웃었다. 농담이 하고 싶어졌다.

지정된 내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다른 반에도 예쁜 분이 계신가 봐요."


물론 선생님이랑 친분이 없어서 대놓고 농담은 못하겠고

나 혼자 스스로에게 소곤대듯이 중얼거렸다.

한마디로 되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는 의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소리 내신다.


"네?"




3


그 말씀이 소리가 작아서 무슨 소리인지 안 들렸으니 다시 말해달라는 의미이신지 아니면,

들렸는데 "다른 반에'도'"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달라는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닙니다."


...라고, 역시 소곤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책상 모니터에 얼굴이 가려지게 몸을 틀었다.

근데 나는 내 농담이 웃겨서 숨죽여 큭큭 웃기 시작했다.


'스스로 막 예쁘대, 오호호.'


농담을 시작할 때부터 대답을 끝내기 까지 선생님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선생님은 소리 없이 내 자리를 지나쳐 뒷문으로 나가셨다.




4


그때까지도 웃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다?


'돌아이로 보시는 거 아냐?'


잠시 심각해졌다가,


'안 들리셨을 거야.'


...라고 스스로 위로하다가... 만에 하나라도 들리셨다면.. 그렇다면..


'몰라, 배 째!'


...라고 막무가내, 철판 깔기로 했다.




5


근데 지금 심각해지고 있다.

'유쾌하게 사는 인생'중에 '농담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좀 가벼웠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6


한편, 이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아마 나라는 수강생을 잘 모르셨던 것 같은데,

적어도 '예쁜 애견 미용사'와는 다른

''예쁜' 돌아이'로 구별할 수 있게 되셨으리라.


예쁜 돌아이... 아무래도 이 글에서만큼은 '돌아이' 앞에

'예쁜'을 꼭 넣어야 한다.

'돌아이'라고 쓰는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예쁜'이라도 넣어야 마음이 덜 상하지.




7


최소한 내가 쓰는 이 글판에서는 내 마음대로 글자 배열을 하고 싶다.


'예쁜 아이돌'


그러나 나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다.

한 자를 빼내어 양심적으로 규정하기로 하겠다.


'예쁜 아이'


그러나 나는 아이는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확정 짓겠다.


'예쁜 I'


조오~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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