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Sep 09. 2023

자잘스토리 7 - 093 - 견뎌라







1


배움처에서 환경 지키기의 일환으로

1회 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식수대에 종이컵도 없고,

1회용 커피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커피 자판기도 없단다.

식수대는 사용할 수 있으나 개인 텀블러 사용을 권했다.




2


보냉 보온이 되는 850ml의 텀블러가 있다.

큼지막하고 보냉이 잘 되어서 애용하는 물건이다.

물기가 맺히지도 않고 용량도 크니

한 번에 가득 담아와 놓아두고 

수업 중에 홀짝홀짝 마시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요즘 입이 자주 말라서 입안을 자주 적셔줘야 했기에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수업을 받는데 그렇게 자주 음료를 마실 새가 있을까 싶어 변경했다.

500ml 보냉병을 사용하기로 외출 직전에 마음을 바꿨다.




3


첫 수업이다 보니 필기구도 챙기고 간식도 챙기고 

보냉병까지 챙기니 가방 안이 북적북적했다.

날이 더웠는데 손풍기는 챙기지 못했다.

노상 쥐고 있는 게 아니라서 간간이 가방에 넣어놓아야 할 때가 있는데,

가방이 말하길,


"그러기만 해봐! 자해할 거얏! 찢어져 버릴테닷!"


...라고 시위하는 듯이 있는 대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고,

마침 나도 힘이 없어서 무게는 줄이고 싶었기에

약간의 비상금만 가방에 넣고 두꺼운 지갑은 빼내어 버렸다.

이런 와중에 손풍기를 들일 여유는 없었다.




4


아침에 비가 왔기에 공기가 너무 습했다.

감은 머리가 마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습한 공기에 젖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두 가지 모두에 더해 땀마저 흘러서인지

여하튼 뒤통수와 목덜미가 축축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 손풍기가 애절하게 그리워지는 순간들이었다.


-아니 그렇게 '그리울' 정도면 넣어가지고 왔어야지, 더운 거 몰랐소?


...라고 하신다면 나는 할 말이 있다.


-더운 거 몰랐겠소! 이렇게 더울지를 몰랐지!




5


여차저차 배움처에 입실하여 수업을 받았다.

중간중간 보냉병의 아메리카노로 입을 축였는데,

3시간 수업이 끝나고 보니 커피가 20ml 정도 남았다.


역시 850ml의 텀블러보다 500ml의 보냉병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주 적당한 용기를 선택해서 가방이 덜 무거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적당한 수분 무게로 덜 무거울 수 있었다.

작은 뿌듯함, 큰 체력 소모 방지....

기뻤다.... 그러나....




6


귀가하려고 지하철역을 가니 또 다시 더웠다.

뽀송했던 목덜미가 다시 축축해졌다.

손풍기..... 흠...




7


내가! 가는 길에 더울 줄, 오는 길에 더울 줄을 몰랐겠소?

알았지요. 단! 이렇게 '극강' 땀나게 더울지는 몰랐단 말이오!


크윽!

신이 원망스럽소!

지금 내 갈등이 뭔지 아시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배움처를 주 5일,

낯선 공부가 부댖껴서 머리 아플 주 5일

더위가 식지 않은 이 같은 날씨에 주 5일,

이 주 5일을 빠지지 않고 다니겠다고 다짐했소.

이 중에 내 고민이 뭔지 아시오?

위에는 없소!

나는 땀 뻘뻘 흘리고 집에 오면 힘들어 죽겠는데

힘들어서 밥맛도 없어 아무것도 못 먹겠는데,

이렇게 힘없고 지친 와중에!


'샤워를 과연 하고 자야 하나? 힘든데 내일 할까?'


...라는 갈등이.... 처절하고도 냉철하게 판단 내려야 하는, 

주 5일을 계속 반복해야 할, 끈질기고도 고뇌스러운 갈등과 고민이오!


오호! 통제라!

내일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어가는 바나나는

지하철에서 어떠한 악재를 맞닥뜨려도 찌그러지지 말지어닷!

나도 악재에 버티노라. 너도 견뎌랏!




8


힘들어서 샤워는 일어나서 해야겠다.... 고 냉철(?) 하게 판단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7 - 092 - 시작, 출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