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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Oct 07. 2023

자잘스토리 7 - 097 - 비스무레한 것






1


소파 커버를 구입했다.

집에 오니 택배가 도착했는데 얼른 소파에 착장 시켜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배움처에서 돌아와 밥 먹고 씻고 숨 돌리니 새벽 1시.

4인용 소파를 조금 이동시켜서 커버를 씌어야 하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무려 새벽 1시에 실행에 옮겼다.




2


다행히 소파를 밀고 끄는 데에는 큰 소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일체형 큰 천을 뒤집어 씌우고 각 부분을 고정시키고

다시 소파를 원위치 시켰다.




3


다행이었다.

받은 커버가 색상이 웹 이미지와 다른 것 같아서 반품을 생각했으나

이래저래 귀찮고, 정 아니다 싶으면 나눔으로 돌리기로 하고 

소파에 착장 시켜봤는데 해놓고 보니 웹 이미지 색상과 비슷해졌다.

접혀져 있던 커버의 부분을 볼 때는 색이 진했는데

넓게 펼쳐지지 차분한 색상이 되었고,

내 방 LED 조명 아래서 차가운 색조더니만,

거실의 일반 조명 아래서는 따뜻한 색감이 드러났다.




4


땀을 뻘뻘 흘리며 대충 착장 시키고 나니 

그 시간 즈음에 자주 깨어나시는 어머니가 거실로 나오셨다.

순간 긴장했다.


'못 쓰겠다, 치워라.'


...라고 하시면 되게 민망하면서 속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어머니 안목과 내 안목이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나와서 잠시 조망해 보시더니

살짝 올라온 커버의 끄트머리를 잡아내리시며 소파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것 O.K 사인이시다.


'괜찮네, 놔두어도 좋다.'


...라는 메시지가 담긴 행동이신 것이다.

한숨 돌렸다.




5


내 물건 사는 건 하나도 겁 안 나는데

어머니 물건 사드리는 건 심장 떨린다.

이젠 어머니의 취향을 알아서 디자인이나 용도의 포인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기에 95%의 확률로 흡족하실 선물을 사 드린다.


그러나 어린 시절엔 성공 확률이 낮았다.

내 눈에는 꽤 예뻐서 귀걸이를, 또는 내 눈에 예쁜 스카프를 사드렸었다.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며 자꾸 어디서 샀는지를 물으시더라.

그리고 어머니는 얼마 뒤에 귀걸이 대신 브로치로, 

스카프의 경우엔 다른 무늬의 스카프로 바꿔오셨더라.

어머니는 고맙다고 어린 나에게 예의를 다 하셨으나, 

결국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는 의미였으므로... 나는... 뭐랄까...

트라우마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근래까지도 어머니 선물을 살 때에는 영 신경 쓰인다.




6


소파 커버를 훑어 보시던 어머니가 작게 중얼거리신다.


"저걸 나중에 빨아야 할 텐데... 빨래를 하려면... 손 가겠네."


그 말씀인즉 빨아서 다시 씌우는 수고를 하더라도 재사용할 의사가 있고, 

버리지는 않으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잠시 생각했다.


왜 예쁘다고 말씀하지 않으시지?

이거 혹시 택배 송장 찾아서 반품하시는 건 아니겠지?

홋홋홋! 반품이나 교환은 어머니가 하실 수 없으시지롱.

웹 쇼핑은 본인만 교환 반품 신청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거 이거... 어쩐지 나의 트라우마 비스무레한 것을 

웹 시대가 보듬어주는 것 같구만 그래.




7


어무니, 전 주문을 웹 쇼핑으로 계속 쭉 할 거랍니다.

제가 사드리면 그냥 사용하셔요, 훗.

못 바꾸셔요~~ 라랄라~~.

왠지 기분이 좋네. 훗.

트라우마 비스무레한 것 극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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