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침 어떤 낯선 어르신이 방문하셨다. 다른 어르신들은 그 어르신의 등장을 매우 반겼다.
알고 보니 전에 이 경로원에 다니시다가 이사하게 되어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신 옛 원생이셨다.
때마침 일이 있어서 이 근처에 들렀다가 여차여차하여 이곳으로 행차하셨단다.
그분은 물으셨다.
"그이가 안 보이시네. 그 어르신 죽었어? 아직 살아있어?"
이날 안 나오신 어르신이 계셨는데 그분의 연세가 98세이다 보니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를 묻는 게 현실적인 질문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속으로 '완전히 돌직구 같은 질문이네. 누가 안부를 저렇게 묻는다지?'하며 의아했고 놀랐다.
하지만, 90세를 넘어선 누군가가 안 나오신 날이면, 병환의 여부를 묻는 것은 예의 바른 질문이고, 생사 여부의 질문도 그다지 무례한 것은 아닌듯했다.
"오늘 허리가 아파서 안 나왔대, 아직 안 죽었어."
어르신들이 너무 거침없이 말씀들 하셔서 '김구라가 뺨 맞고 울고 가겠네.' 싶었다.
괜히 나 혼자만 놀라서 주변을 살피고 그랬는데 도우미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본 어르신이 씩 웃으시더라. 나도 따라서 풋 웃었다.
그저 '여기선 그런다우.'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2
은행에 갔다.
청원경찰분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한 할머님의 통장을 봐드리며 설명을 해드리는데 당최 할머니께서 못 알아들으셨다.
80대로 보이시는 이 할머님은 시력이 안 좋으신데 안경도 없고 청력이 안 좋으신데 보청기도 안 하고 오셨나 보더라. 사람 좋은 경찰분이 몇 번이고 설명을 해드렸는데 할머니는 같은 질문을 벌써 대여섯 번 했고 경찰분의 말씀이 끝나자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귀에 대고 쩌렁쩌렁하게 말씀드리는데도 못 알아들으시니 경찰분은 난감하신 모양이었다. 다시 최선을 다해 크게 설명을 해드렸는데 할머니 왈 "그래서 이번에 돈이 들어왔어?" 그때 그 질문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고 웃었다. 사실 그 상황이 좀 웃음이 날 법한 상황이었기에 나도 좀 웃었다. 근데 더 듣고 있자니 웃기가 좀 그렇더라.
40만 원이 들어왔냐고 거듭 물으시는 것으로 보아 어디에선가 생활비가 들어오는 모양이었고 남는 돈이 50만 원이 되냐고 물으시는데 6만 원이 보험금으로 빠져나가서 44만 원이 남았다고 대답해주니까 '안되는데...'를 반복하시다가 남은 돈을 다 찾겠다고 하신다. 거기에 할머니의 행색이 초라하셔서... 정리되지 않은 흰머리칼, 굽은 등, 추위를 견디기엔 어려울 편직물 겉옷...
청원경찰분은 출금을 위한 종이 작성을 써주고 할머님께 안겨드렸다.
그리고는 기다리셨다가 대기번호가 뜨면 알려드리겠다고 한다.
경찰분은 다른 고객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겨갔다.
나는 슬쩍 봐서 그 할머니의 대기표가 161번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대기번호표가 165번이니까 할머님이 먼저 일을 보시겠구나 생각했다.
전광판에 161번이 뜨는데 할머니는 가만히 계신다.
나는 할머니 뒷자리에서 보고 있다가 할머니를 툭 쳤다. 귀가 안 들리시니 말로 하기보다 손가락으로 전광판을 가리켰다. 할머니는 전광판을 보다가 자신의 번호표를 보고 한참을 가만히 계신다. 보니까 161번 숫자를 거꾸로 들어서 191번으로 보고 계셨던 터라 자신의 차례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결국 청원경찰이 출동해서 할머니를 모시고 창구까지 가더라.
잘 살펴보면 할머님이 명민함도 있으시고 정정하시기는 한데 시력과 청력이 나빠서 고생하시는 것 같았다.
현금과 통장을 들고나가시는 할머님의 뒷모습이 작고 여려 보이셔서 마음이 좋질 않았다.
별생각 없었는데 80~90대의 나이로 경로원에서 지내시는 분들은 그래도 형편이 괜찮으신 분들인가 보다. 그분들은 자식들이 주는 용돈과 사다 주는 옷, 먹을 것 등을 소비하시며 경로원에만 계실뿐, 따로 세금이나 보험료를 내러 은행에 간다거나 장을 보러 시장에 간다거나, 그런 일들은 안 하시는 것 같았다.
요즘 경로원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뵙다 보니, 거리에서 뵙는 할머님들도 예사로 보이질 않는다.
내 관심 영역 안에 '할머님, 어르신'이라는 대상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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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리클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