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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Feb 17. 2024

자잘스토리 8 - 007 - 알에 금  






1


어머니와 나는 언쟁했다.




2


다 큰 성인이 왜 연로하신 어머니께 맞서느냐?

따르고 져드려야 하지 않느냐?

철이 없느냐, 불효자 아니냐?




3


어머니와 살벌하게 언쟁하는 도중에 저 생각들이 들었다.

나도 더 컸으니 사리판단을 어느 정도 하지 않겠는가.

맞서는 내내 저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가 하도 독하게 나를 바꾸려 하시길래,

나도 평소와 다르게 강하게 나갔다.




4


말 한마디 대꾸하는 게 벌벌 떨렸지만, 안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던 갈등이 1000번 정도 있었다면, 

그중 700번은 일방적으로 혼이 나는 식이었고

280번은 져드렸고, 16번 정도는 맞서 싸우다 졌고, 

4번 정도는 내가 화를 냈다.


이겨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날은 딱히 맞설 일도 아닌데,

너무 어머니 방식을 고집하시며 따르라고 하시니 심통이 났다.

내용도 별 거 아니었다. 살림살이 방식을 당신 식으로 하라시길래 

내 식으로 해도 된다고 주장, 대립점이 생긴 것 뿐이었다.




5


결과는 팽팽하게 대립하다가 감정이 상해서 각각 방으로 헤어졌다.

이긴 것도 아니지만, 내 방식을 주장하고 내 의견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내 권리를 부르짖(?)었기에, 뭔가 작은 자아에 불과했던 내가  

커다란 어머니만큼의 존재로 성장한 것만 같지 않았겠는가.

데미안이 생각났다.




6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나는 알을 깨고 나와 비로소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농담 아니고, 진짜로.




7


내가 내 권리를 부르짖은 내용이 뭔지 아시는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 살림이야! 내 식으로 해!"


"어무니 살림이면 어무니가 하시지요? 

나도 하니까 내 살림이기도 해요! 그러니 내 방식으로 할 거예요!"


웃긴 건, 한 번도 내 살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기 싫어서 내뱉고 나니, 큰일이 났음을 알았다.

그동안 내가 맡은 살림은 밥, 간식, 뒷정리 정도였는데,

내 살림....? 

그건 내가 진정한 살림, 요리와 각종 수납 정리를 비롯한 

그 이상의 것들을 해야 함을 뜻하는 거다.


젠장, 알에서 깨긴... 진정 알에서 깨어난 거라면....

그래서 내 살림이 된 거라면, 그래서 살림을 왕창 해야 한다면....?

아... 알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알 붙이는 접착제는 얼마지?

알 안에 들어가서 내부에서 붙여도 붙여지나?

알 바깥에서 붙여야 한다면? ....어무니...좀 붙여주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죄송해요.. 어무니... 그러니..

...좀 붙여주세요.




8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나는 진정 알에서 깨어나진 못한 것 같다.

안온한 알 속을 더 좋아하니 말이다.

진정 깨어날 때까지 조용히 어머니의 살림 비결부터 전수받아야겠다.




9


반성하고 있는 나.

이제 알에 금은 났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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