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Feb 24. 2024

자잘스토리 8 - 008 - 계획의 효용






1


일곱 가지 항목에 대한 일주일간의 수행계획을 세웠다.

분명 계획을 세울 때에는 완수를 목표로 했으나,

어쩐지 계획표를 펼쳐놓고 찬찬히 바라보자니,

이중 몇 개는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을 것 같다.




2


그럼 지키지 못할 항목은 빼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엑셀로 멋들어지게 표를 완성해서 이미지 파일로 전환,

그 파일을 바탕화면 포스팃에 띄워 놓기까지 했다.

이미 나는 계획을 세우면서 즐거워했고,

그 과정을 누리며 일종의 희열을 느꼈으며,

포스팃에 올려놓으며 너무나 설레는 희망에 들떴던 것이다.

그 기분이 너무 즐거운 것이었다.

그게 뭐? 어차피 못 지키면 쓸모 없는 거 아니냐?

아니, 아니다.

7가지 항목들이 정말 필요한 것들이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못 지킨다면 제외하는 게 옳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싫다.




3


정말 빼버릴 것 없는 항목들이고,

게다가 7개 항목에서 줄어든다면 뭔가 

바람 빠지는 풍선 느낌이 들어서 폼이 안 날 것 같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4가지 정도가 적정 가짓수라고 본다.

그럼에도 조금 바쁜 듯, 빠듯한 듯이 살아야 활력도 돌고,

또 버겁게 좀 많아야 긴장감 있게 살아서 딴 생각이 안 들 것 같다.




4


어차피 계획의 효용은 절반가량 누렸다.

세우면서 즐겁고 희망에 들뜨는 것은 그 효용의 절반이고,

수행해 나가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반의 반이고,

나머지 반의 반은 수행을 실패하면서 되돌이켜보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데 있다.




5


마지막 1/4의 효용을 넘치도록 느끼려면 

이상스럽게도 계획을 처절하게 실패하는 게 필요하고

그래서 말이 안될수 있지만 부러 계획을 

좀 무리하게 많이 세우는 게 필요하다.




6


어떤 항목은 주 4일을 수행해야 하고, 

어떤 항목은 주 7일 수행이 모자라서 

8번째 날은 마무리와 동시에 다시 시작을 행해야 한다.

이것은 바쁘게 수행해야 한다는 데에 한숨이 나오게 하는 게 아니라

쉴 틈이 없다는 현실이 보여 탄식이 흘러나오게 한다.

그럼 안 하면 되지 않느냐, 줄여라?

그럴 수 없다, 가짓수 줄이면 폼이 안 난다.




7


그렇다고 영 무리한 계획표는 아니다.

시간과 요일을 잘 분배하면 수행 가능하다.

다만 쉬운 건 아니라는 것.

그럼 왜?

말은 돌고 돌아서, 바쁘게 사는 게 긴장감 있어서

사람에게 쫄깃쫄깃 영혼의 탄력을 준다는 믿음 때문에

버거운 가짓수의 계획을 세웠다는 것.




8


찬란하게 세운 수행 계획이 처참하게 무위로 끝나서

마지막 1/4의 효용인 사색과 성찰만 잔뜩 느낄지라도,

효용은 뭐라 해도 효용이다.

어쩌면 그것들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일지도.

망가지고 어그러지더라도 계획은 세워봐야 한다.




9


곧 3월.

1월 1일과 구정설만 '시작'하는 날일 필요있는가.

3월에도 새 학기가 시작하니, 

그 시작의 시기에 합류하여 계획을 세워보심이 어떠할지?

세우는 과정에서 절반의 효용은 느끼실 테니,

손해는 안 보실 듯.




-끝-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8 - 007 - 알에 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