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오빠 내외가 왔었다.
매번 만들어내놨던 간식이 지겨울까 봐 색다른 간식을 미리 전날부터 만들었다.
진작에 만들어 먹어왔던 것이지만
오빠 내외에게는 처음 대접하게 되는 간식이었다.
만들 때 넉넉히 만들어져서 네모난 락앤락 2통에 가득 찼다.
숙성을 시킨 후 먹어야 하므로 대충 통에 나누어 담고,
"너흰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통안의 간식들에게 존재로서의 자신감을 갖게끔 응원을 하고,
동시에 주문을 걸어 냉장고 안에 잘 두었다.
2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족들은 모두 식사를 하고 간식을 먹는 중이었다.
특히 오빠와 언니도 와서 담소하다가
작은 네모통안의 간식을 다 먹어가고 있었다.
오빠 왈,
"맛있다. 근데 저 한 통 남은 거 가져가도 될까?"
응? 아직 맛 못 본 사람이 많은뎅...
오빠는 다시 왈,
"이게 보통은 너무 달 텐데, 네가 많이 달지가 않게 만들어서 맛이 있어."
...라고 진심으로 맛있어 하는데 또 어찌하랴.
맛을 못 보신 아버지에만 조금 덜어드리고 통째로 건네주었다.
3
그리고 오늘 다시 만들고 있다.
지금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고 차갑게 식기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이 간식을 만들 때에는 커스터드 크림도
달걀 깨서 노른자 분리해가며 직접 만드는 정성을 다했으나,
이제는 비용을 들여 커스터드 믹스 가루를 사서 물 넣고 젓는다.
그럼 간단하게 커스터드 크림은 완성.
한결 수월하다 보니 절로 외치게 된다.
'요리도 돈 들이면 쉽다!'
4
아닌 게 아니라, 다음 과정이 액체 생크림을 거품 생크림으로 만들려면
한 방향으로 엄청나게 저어줘야 하는데, 나는 무섭지 않다.
휘핑기 비스므레한 것이 있으니까.
없었으면 직접 손으로 휘저어야 했을 테니,
한여름도 아닌데 땀 범벅이 되었을 테고,
팔뚝은 알이 배겨서 한 사흘간은 앓는 소리를 흘려야 했을 것이다.
전에 사둔 핸드 믹서에 거품기만 교체해 끼우면
전용 휘핑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
돈 들여서 핸드 믹서를 안 샀다면 그래서 휘핑기가 없었다면,
난, 간식을 안 만들고, 안 먹고 말았을 것이다.
이게 애초에 돈 들여서 핸드믹서를 샀었기에 오늘의 간식 만들기가
쉬울 수 있었던 것으로, 다시 강조하여 외친다.
'요리는 돈 들이면 쉽다, 알도 안 배긴다.'
5
지금 무사히 크림을 만들고 재료를 섞어서 완성하고 왔다.
막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작시켰으니 내일쯤 꺼내어 먹으면 될 것이다.
크림 덩어리라 체중 증가가 걱정되지만,
동거인 두 분은 워낙 체중이 빠지고 계시는 터라,
안 드시면.... 그게 더 걱정.
꼭 맛있어야 하는뎅. 그래야 드실 마음이 생기실 텐뎅...
이런! 통안의 간식들에게 존재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응원과 격려 그리고 주문의 메시지를 까먹고 말 안 했다.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너희는 진정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라고 슬며시 속삭여야겠다.
6
요리는 돈 들이면 쉽다지만,
그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그래도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요리는 '정성'이다.
이 주장에 딴지를 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정성을 다하여 만들고 정성을 다하여 냉장고 안에다 맛있어져라....
결론, 범사에 정성을 다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