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Jul 13. 2024

자잘스토리 8 - 027 - 보기 좋아야 먹기도






1


채칼을 샀다.

당근 라페를 하기 위해선 당근채를 썰어야 했다.

일단 집에 있는, 감자 깎는 칼처럼 생긴 채칼로 

당근을 채 내어 봤더니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과정이 너무 살벌했다.

채칼이 왠지 무서워서 포크로 당근을 찍어서 들고

그런 후 손잡이 잡고 칼로 슥슥 채 썰어냈는데,

나는 무섭더라, 칼날이 포크 잡은 내 손을 향해 있다는 게.


그래서 김장철 무채 써는 채칼을 샀다.

그리고 당근을 채 썰어봤다.

손잡이 채칼보다는 훨씬 간편하고 시간도 단축되고

힘도 덜 드는 게 굉장히 편했다.




2


근데 손을 베었다.... 젠장.

칼 무서운데 손을 베이니 헉 소리가 났다.

다행히 얇은 채칼이어서 게다가 손톱이 막아줘서

피는 안 났는데 검지 손톱이 찢어졌고,

손가락 끝에 칼날이 긁고 간 두 줄 상처가 났다.

식겁했으나 피가 안 났으니 채는 계속 썰었다.




3


좋은 채칼이라서 굵기 조절이 된다.

치아 약하신 어머니를 위해 얇은 굵기 단계로 놓고 

채를 썰었고 순식간에 그득하고 보기 좋은 당근채가

예쁘고도 얇게 쌓였다.

그걸 소금에 절이고, 물기 짜내고, 양념해서 

당근 라페를 만들어 냈다.




4


사실 당근 라페 만드는 과정, 과정, 돈 아닌 것이 없었다.

채칼 샀지, 야채 짤순이 샀지, 올리브 오일 샀지, 홀그레인 머스터드 샀지...

진짜... 내가 나 먹을 것도 아닌 것에 

왜 이렇게 돈을 썼느냐 하면!

왜일 것 같은가? 이게 다~아~

효도할라고.... 효녀 될라고...

옛날엔 효자효부상 있던데.... 난 안 주나?

손가락에 금 갔는데...

...피는... 안났...떠.




5


식사 시간에 당근 라페를 내어놨다.

어머니는 드시는데 아버지가 손을 안 대신다.

어머니가 권하셨다.


"맛있어요. 드셔보셔."


아버지가 답하신다.


"시장에서 파는 건, 맛이 얄팍해."


"져니가 만들었다니깐요."


"져니가? 에이... 채가 이렇게 일정한데?"


손가락 금 가서 아픈 마음, 아버지가 말씀으로 한번 더 금 그으시네.

그래요, 저, 칼질 못하고 채는 더욱 썰줄 모르는 칼 겁쟁이에요. 흑..


"져니가 이거 하려고 채칼 샀다우. 먹어 보시오."


그제야 아버지께서 한 젓가락 집으시더라.




6


뭔가를 새로 시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요리이고 만드는 요리가

한식이 아닌 쌩 외국 요리이면,

게다가 일상이 한식으로 점철된 생활인데 느닷없이

딴 나라 음식을 하려 하면, 식재료 준비 비용이 많이 든다.


거기에, 요리를 하려는 사람이 칼질을 못하면 되게 과정이 피곤해지더라.

하지만 져니는 돈 있음, 채칼, 삼만 오천 원~, 떠억~ 플렉스~!

아부지도 곧 '보기 좋은 당근채가 먹기도 좋다,라는 것을 느끼실 게다.




7


미술 재료비, 주방 재료비, 취미 비용까지..

이번 달의 절반이 안 지났는데....

지출을 출혈이라고 하는 이유가 절절히 공감된다.


그럼에도 져니는 씩씩하게 다시금 긴축 재정을 공표하며,

7월 어느 날 다이소에서 다꾸 용품 플렉스 할 생각으로 마음을 부풀린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자잘스토리 8 - 026 - 어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