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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l 05. 2024

자잘스토리 8 - 026 - 어쩌지






1


야채 짤순이를 샀다.


절인 오이의 물기를 손으로 짜내려다가

안 해보기도 했고, 잘 모르기도 해서,

한 손으로 오른손을 꾸욱 감싸누르며

강하게 짜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손가락이 너무 말려 눌리면서

근육이 놀랐는지, 인대가 늘어났는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손가락들이 욱신욱신 하다.


오른손의 세 손가락은 괜찮아졌는데

검지 손가락만이 컨디션을 못 찾고 있다.

검지 마디마디 약간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인터넷을 주야장천 보다 보니

마우스 롤 내릴 일이 많아, 검지가 열 일 해서 그런가 보다.


야채 짤순이를 사서 오이는 안 짜도 되지만,

마우스 롤은 안 쓸 수 없는데....


어쩌지?




2


지인과 통화하다가


'요즘 혼자 욕을 내뱉으며 중얼거린다.

딱히 화나는 일이 생긴 건 아닌데,

괜히 지난 일 생각하며 욕한다.'


...라고 하니,


'나쁜 치매 걸리겠네.'


...라고 해서, 그게 뭐냐니까,


'착한 사람이 그러다가 나중에 치매 걸리면

성질 나쁘게 행동하는 치매에 걸린다.'


...라고 해서 일단 웃었다.

착하다는 칭찬이지만 고약한 나중을 의미하는 말이라,

잠시 웃고 침묵, 생각에 잠겼다.

지인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듣지 않고 한 20초 정도 심각했던 것 같다.

나, 정말 나중에 그렇게 되면...


어쩌지?




3


그림을 참 좋아한다.

미술관에 가서 명화를 보고 감응하는 능력도 좋고,

화풍을 보고 화가를 알아맞히기도 꽤 잘한다.


그렇게 그림을 좋아하면서 막상 그리는 능력은 별로 없다.

수 년 그려봐서 안 그리는 사람보다는 좀 그린다고 치지만,

아무래도 안목에 비해, 창작 능력이 현저히 별로다.

게다가 그림을 그릴라치면, 성격이 급해서 

얼른얼른 그려나가야지, 중간에 지우고 고치고 그런 걸 안 한다.

이래서 실력의 발전이 없는가 싶어, 그림은 거의 포기했다.


요즘 웹에서 그림 그리기 강좌를 듣고 있다.

막상 들어야 하는 강좌는 듣지 않고,

곁가지로 듣는 그림 강좌에 혼이 쏙 나가서,

정신 차리고 보니, 미술 재료를 대량 주문했더라.

내 살림의 긴축 재정은 20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미술 재료를 수어만 원어치 구입하다니...


그림에 대한 자질이 희박한데,

거기에다가 돈은 잔뜩 쓰고...


어쩌지?




4


잠을 자고 일어나도 피곤에 쩔어있는 느낌이고,

아메리카노를 두 잔 마셔도 정신이 쨍하지를 않고,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발라도 생기가 돌지 않는다.


요리를 하고, 웹서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그림 강좌에 정신 팔리고... .


말끔하지 않은 컨디션과 초점을 잃은 일상.


운동을 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데,

자꾸 필요 이상 다른 데 시간을 쓰고, 엉뚱한 데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약간의 건강을 회복하고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다시금 읽고 쓰고 생각하고 생생 기록하는 일상을 찾아가야겠다.


만약... 다시 또 중심을 잃으면...

어쩌지?


어쩌긴?

기우뚱 기우뚱하다가 종국에는 바로 서는 오뚝이가 되야지.

오뚜기는 3분 카레 쥐.... 음? 뭐냐고? 몰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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