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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n 22. 2024

자잘스토리 8 - 025 - 더운 외출 날






1


어제는 날이 더웠다.

손풍기를 들고 외출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손풍기를 놓을 수 없었던 더위였다.




2


일단 쇼핑몰에 입성하자 몸이 시원해졌고 

그래서 손풍기는 가방에 넣어놓고 쇼핑을 즐겼다.

그냥 눈으로만 구경을 즐기려 했는데

지인이 옷을 골라주며 


"이건 어때?"


...라고 물었다.

골라서 보여줄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양이 아니야."


"나는 free 사이즈는 너무 커서 못 입어."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고 적당히 넉넉하게 흘러내리는 걸 좋아해."


"색상이 내 얼굴에 안 맞아..."


지인은 열댓 번 옷을 골라 보여줬고, 

그때마다 나는 그 옷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말하다 보니 내 취향은 물론 신체적 특징까지 고스란히 말해버리는 식이 되어 버렸다.

신기한 건, 지인이 똑똑하더라는 것이다.

인간 AI인 듯이, 말하는 즉각 즉각 입력이 되는지, 

그 다음에 골라주는 옷은, 점점 내 취향에 근접해가더니,

마침내, 내 취향과 체형에 딱 맞는 옷을 골라다 준 것이다.


원래 옷을 살 생각이 없었는데,

고렇게 딱 좋은 옷을 골라줬는데 안 사고는 못 배기겠더라.

그래서 예정에 없던 지출을 떡~.




3


지인이 점심 값도 더 많이 지출하고, 내게 직접 만든 키링도 선물해 주고,

옷도 진짜 열심히 골라다 주고... 나는 말했다.


"저녁 뭐 먹을래? 내가 살게, 나는 김밥!"


요래 말해서, 분식집에 가서 김밥과 라볶이를 주문, 

저렴한 저녁 값은 내가 지불하고 왠지 미안했다.

지인의 마음 씀에 비해 소박한 대접이지 싶었다.




4


지인에게 받은 배려에 내 마음이 풍족했는지,

내가 엉뚱한 사람에게 베풀고 있더라.


환승해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 줄의 (추정 20대의) 작은 여자가 긴 머리를 자주 들추고 있었다.

주로 목덜미의 머리칼을 슬쩍 옮기고 있었고

목덜미의 땀으로 머리칼이 젖어 있었다.


나도 긴 머리로 목덜미에 땀이 나고 있었고,

때마침 손풍기를 꺼내들고 있었는데, 

앞의 그 작은 여자가 손으로 머리칼을 들추다가 슬쩍 뒤를 돌아봤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작고 순해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친절을 베풀고 싶었는지,

아니면, 나, 그날 지인에게 배려를 많이 받아서, 정이 충만했는지,

손풍기를 든 내 손이 절로 그녀의 목으로 향했다.

바람이 그녀 목덜미의 열기를 잠시 식혔을 것이다.

작은 그녀는 "고맙습니다."라고 했는데, 문제는,

내가 손풍기를 언제 회수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3초 쐬어주고 바로 거둬들이기가 뭣해서,


"20초만 쐬어 드릴게요... 하나.. 둘..."


...까지 말하며 세고, 셋부터는 속으로 헤아렸다.

그리고 20초가 되어갈 때쯤 지하철 도착음이 울렸고

적당한 타이밍에 멈추고 바로 탑승...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5


그 작은 여자분이 너무 세련되고 야무져 보였다면 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분이 알맞게 깔끔하고 꽤 많이 착해 보여서, 정감이 가서 그렇게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가끔 이유 없는 친절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너무 세련되고 야무져 보이는 나머지,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아니어서,

적당히 깔끔하고 어느 정도 선량해 보이는 이미지가 도움을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었을까?

물론 어쩌면 그분들도, 내게 도움을 주신 그날,

친절한 지인에게 배려 받는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고 말이다.




6


너무 오랜만에 외출하고 움직였더니 집에 도착해서....

그거 아는가? 너무 피곤하면 외려 안 쓰러지고 잠이 안 온다.

너무 피곤했는지 새벽 4시까지,


'자고 시퍼... 왜 자미 안 와?'


요래 되뇌다 겨우 잠들었다.




7


일어난 지금 피곤 후유증이 안 사라져서

커피를 들입다 마시고 있다.

한 잔 더 마셔야 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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